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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7

SPECIAL

[개관 5주년] 오래된 꿈이 새롭게 펼쳐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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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꿈이 새롭게 펼쳐지는 공간

 

김미주

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이 가득한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닥부터 빼곡하게 책이 쌓여있는 다락,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가장 윗줄에 손이 닿는 높은 서가가 있는 방, 길쭉한 서가가 일렬로 들어선 비밀통로 같은 복도. 책덕후들에게는 곧 천국으로 치환되는 곳이다. 게다가 단순히 독서하는 것만이 아닌 이 공간의 책을 가질 수도 있다면? 그야말로 보물섬이다. 곳곳을 살피고 뒤져내어 나와 딱 맞는 한 권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대로 털썩 앉아 쭉 읽어나가도 좋고 고이 집으로 모셔가 한 장씩 아껴가며 넘기는 맛도 남다르다.

 책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서울책보고는 큰 행복을 선사하는 곳이다. 아트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운 곡선미의 거대한 철제책장에 오밀조밀 세심한 분류로 책들이 구석구석 들어차 있으니 독서광들이 열광할 만하다. 모여 있는 책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다. 낡은 듯 하나 이미 검증된 이야기들, 속칭 헌책이라 불리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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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헌책은 ‘한 번 선택되었던 책’이다. 다시 정의를 해보자면 즐거움이 증명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첫 주인과는 사정이 있어 떨어지게 되었으나 그 안에 감춰진 매력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야기 중심의 책이든 정보 중심의 책이든 누군가에게 선택받았던 것들이며, 그 책들이 다시 읽힐 기회를 부여받는 것은 의미가 남다른 일이다. 서울책보고는 그런 책들을 모아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이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설레던 기분을 떠올려본다. 신전의 입구처럼 줄지어 웅장히 서있는 아치책장의 책들이 정말 보물처럼 느껴져 흥미가 없는 분야의 책들도 한 번씩 꺼내보곤 했다. 타인의 오래된 이야기가 나에게로 와 새로운 인연이 되는, 소소한 일상의 마법 같은 순간들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책을 고르고 바삐 페이지를 펼쳤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서울책보고 곳곳에서 새로운 주인과 조우한 책들은 그들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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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년 동안 서울책보고는 책 관련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운영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헌책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도록 친절한 가이드를 전하는 책 추천 프로그램이 독보적인데 나와 책과의 연관점을 직접적으로 조명하는 생년문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큐레이션 등으로 다양한 분야의 헌책들을 흥미롭게 소개해왔다. 또한 미술, 음악 등의 색다른 테마 섹션 도서 전시를 진행하고 독립출판 작가들의 북콘서트문학낭독공연 등으로 깊이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기도 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서도 충실히 소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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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연 : 1+1=∞, 무장애 여행의 모든 것  ⓒ서울책보고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든 특별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 기대가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와 드라마/예능에서도 서울책보고의 공간에 주목하여 여러 멋진 씬들로 만들어냈다. 가장 오래된 콘텐츠인 책, 그것도 헌책으로 가득한 공간이 트렌디한 매체에서 주목받고 활용된다는 것은 `Oldies But Goodies` 그 자체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책이 주는 즐거움은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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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溫 책보고 :  가죽 공예 체험 ⓒ서울책보고

 

 

 결국 공간은 사람이 만들어낸다. 지난 5년간 서울책보고를 찾아주신 시민들이 이곳의 정체성을 부여해 주시고 애정으로 키워주셨다. 부디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계속 찾아주시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특히, 이 공간은 나 같은 어른이 책덕후뿐만 아니라 내일의 독서광이 되어야 할 어린이들에게 늘 재미있고 두근거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에 다양한 연령대와 관심사를 고려한 특별한 기획들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하니, 더욱 멋지게 진화할 서울책보고를 기대해 본다. 

 앞으로도 오래된 것으로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이 뜻깊은 장소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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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주

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열두해 동안 동서식품에서 주최하는 여성문학상인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사무국장 역임 중이며,

열다섯해 동안 독서모임 주모인, 여전히 책 읽는 게 제일 좋은 잡식성 도서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