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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6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옛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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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옛날 책

 

          오은


 


아빠는 책이 많았다

아이는 그것을 옛날 책이라고 불렀다


옛날 책의 세계에서는

사글세가 아닌 삭월세 

일찍이가 아닌 일찌기 

했습니다가 아닌 했읍니다 


아이는 옛날 책을 열심히 읽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옛날 책대로라면 설레이는 마음으로


며칠이 몇일이고 

닦달이 닥달인 옛날 책 


돌이 돐이었던 

수꿩이 수퀑이었던 

해코지가 해꼬지였던 옛날 책


찌게였을 때도 

찌개는 뜨거웠을 것이다

낭떨어지였을 때도 

낭떠러지는 아득했을 것이다


바램이었을 때도

바람은 쉬 바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다

어른이 된 아이는 

맑게 갠 하늘에

맑게 개인 하늘을 포갠다


아빠가 그리울 때면

그리움이 가려움이 되기 전에

옛날 책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괜스레가 아닌 괜시리의 세계로

오랜만보다 오랫만이 더 길게 느껴지는 세계로

안절부절못하기보다 안절부절하는 게 익숙한 세계로


그곳에서는 

다름이 틀림이 되기도 하고

들름이 들림이 되기도 하고

반드시가 반듯이 누워 있기도 하고

애먼 사람이 갑자기 엄한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하지만 


옛날 책을 읽을 때면

아빠가 옆에 앉아 책장을 넘겨주는 것 같다

여기에 밑줄 그어야지 다정하게 속삭이는 것 같다


아빠가 살아 있는 게 당연한 세계가

옛날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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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