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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5

INSIDE

[서울책보고 직원이 요즘 읽는 책] 서울책보고 직원이 요즘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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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직원이 요즘 읽는 책


《약속》

민시우 동시집

 

민시우 글, 문소정/민혜원 그림, 가쎄, 2022 

기획홍보팀 L팀장

 

 

 

 

민시우 동시집 약속.jpg

 

 

 

나는 예전에 시(詩)를 즐기지 않았다. 

시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산문보다 짧고 간결해서 더 빨리 완독할 수 있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대형서점에서 당시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시집을 사서 펼쳤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해와 공감이 어려웠던 적이 꽤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난해한 시라는 평이 붙은 시가 아닌데도 무엇을 전하려는 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고 특별한 감상 포인트도 잡지 못하며 시를 전혀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시에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도 많이 했다. 흔히들 말하는 요즘 시는 예전 학교에서 배웠던 전통적인 해석 방법으로는 아예 접근이 어려웠고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접근 방법은 전문 비평가가 전문 독자들을 위해 알려주는 소위 ‘그들만의 방법’이라서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에로의 접근 방법을 고민만 하다가 시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시에 관한 이런 경험은 오직 나만 겪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던 중 독서가 삶인 한 지인에게 ‘시’에로의 접근 방법에 관한 내 고민을 얘기하게 되었고 그의 대답은 나의 고민을 상당 부분 해결해줬다. 그는 시가 보편적인 것을 담았는지, 시인을 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면 그 시에 접근하기가 조금 더 쉬어진다고 내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주제의 시라면 쉽게 접근하고 공감하겠지만 시인이 담겨있는 시를 만나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 중에는 당연히 내가 이해하기 쉬운 사람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존재하듯이 시인도 그렇고 그들이 만든 시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중에 난해함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듯이 시인이 자신의 시에 시인 자신을 많이 담을수록 이해와 공감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아무리 시를 좋아하는 독자도 세상의 모든 시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 여러 사람을 만나듯 여러 시를 접하는 것이 좋은 시를 만나는 방법이라고 했다. 지인의 말 덕분에 그 후로는 편하게 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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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06회 캡처 ©tvN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어느 날, 국민 MC 유재석과 인기 개그맨 조세호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민시우 어린이를 보았다. ‘시 쓰는 제주 소년’이라는 소제목이 화면 왼쪽 윗부분에 적혀 있어서 처음에는 그저 시 쓰기에 재능이 있는 어린이의 이야기인가 보다 하며 제주 아이의 일상을 들으며 그저 무심코 TV를 켠 채로 있었는데 하늘나라로 간 엄마를 너무도 그리워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엔 엄마로 귀결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시 낭독을 들으니 조금씩 마음이 동요되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다. 민시우 어린이는 《약속》이라는 시집을 냈다. 이 시집의 대표 시는 책 제목과 같은 <약속>인데 방송에서 민시우 어린이의 낭독을 듣다 십수 년 전, 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갑자기 마음이 뭉글했다. 이제는 그리움도, 상실의 고통도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약속〉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약속이라는 시가 나와 많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집《약속》을 구해서 읽었다. 열두 살 어린이의 동시, 일기, 편지를 모아 놓은 시집이기에 나이 먹은 어른인 내가 시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라는 시를 읽다 눈앞이 흐려져 잠시 책을 덮었다. 

'아직 열두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버렸다.' 

'너무나 사소한 행동,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열두 살 아이가 알아 버렸다.'

조금은 인생을 빨리 알아버린 시인이 가엾고 애처로웠다. 나는 나이, 세대, 환경 등 서로의 모든 차이를 개의치 않고 시를 통해 시에 담긴 민시우 시인을 만났다. 좋은 시, 좋은 시인을 만나서 좋다. 덕분에 그리움과 소중함이 되새겨져서 좋다.

 

 

기적


민시우

 


숨 쉬는 것, 뛰는 것, 걷는 것

안아주는 것, 먹는 것

 

게임하는 것, 운전하는 것.

잠자는 것, 씻는 것

 

이런 게 모두 다

기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