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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5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분초사회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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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25

분초사회의 독서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인간 사회는 언제나 바삐 돌아갔다. 분명 100년 전 사회라 해서 일반인들의 여유시간이 지금보다 확연하게 많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와 달리 디지털 문화에 노출되었고 이는 가공할 변화를 불러왔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의 여가 시간은 계속해서 쪼개졌다. 한나절에서 한두 시간으로, 그다음에는 5분, 1분으로 말이다. 과거에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았다면 이제는 5분짜리 영화 요약 유튜브를 보는 식이다. 그렇다. 시간의 호흡은 짧아지고 또 짧아져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사람들은 한두 시간 단위의 오락마저 답답함을 느낀다. 뇌는 즉각적인 자극을 원하고, 대중은 틱톡 영상이나 모바일 게임처럼 단시간의 오락물을 찾는다. 이쯤에서 고전 속 인물들을 떠올려보자. 19세기 이전에 살았던 그 인물들은 쉬는 시간에 사냥을 하거나 오프라인 사교 활동을 즐겼다. 내향적 성격일 경우,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책을 읽거나 잡지를 뒤적였다. 이유는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해당 인물들도 현대에 태어났다면 책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으리라.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책이 아니라 유튜브를 보는 뒤팽, 아침마다 신문이 아니라 SNS를 훑는 홈즈를 상상해 보자. 좀 없어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오늘날 활자라는 매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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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따라서 독서율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읽는 일은 그야말로 시대에 역행하는 취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대다수 사람이 답한다. “시간이 없어요.”라고. 하지만 현실을 보건대, 우리는 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을 독서에 쓰지 않는다. 독서는 너무 긴 호흡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두 시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그 시간을 3분씩 쪼개 유튜브에 쓸지언정 셜록 홈즈 시리즈(심지어 단편집이어도!)를 읽는 데 쓰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독서는 충분한 도파민을 제공하지 못한다. 재미있게도 내가 연재 중인 <고전 리뷰툰> 또한 이런 의미에서 수요가 있는 듯하다. 책 대신에 리뷰 웹툰을 보면 도파민도 빨리 채울 수 있으니! 

 

하나의 시대적 고비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시대에 독서는 빠르게 소비 가능한 웹소설이나 요약본이 대신하리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효율의 대상에서 진지한 문학 작품은 제외되는, 그저 그런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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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1973), 미하엘 엔데, 한미희 옮김, 비룡소(1999)

 

하지만 이런 세태를 그저 긍정할 수만은 없는데, 이미 비슷한 사례를 절묘하게도 문학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이다. 이 책에는 회색 신사라는 시간 도둑이 등장한다. 회색 신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를 권장한다. 얼핏 보면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좀 다른데, 회색 신사는 사람들의 인생에서 느린 행복을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며 손님과 살갑게 대화하던 미용사가 입 다물고 머리만 자르게 되고, 자기 일에 행복을 느끼며 여유롭게 일을 마치던 청소부가 정신없이 청소만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효율이란 미명하에 가족과 친구를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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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회색 신사의 해결책은 실상 그리 효율적이지도 못했다. 시간을 큼지막하게 쪼개던 시절에 생기는 무형의 행복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73년도에 출간됐으나 시간에 쫓기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를 보는 듯하다. 쉽게 도파민을 얻는 우리들, 시간을 분초 단위로 효율적으로 쓰는 우리들은 우리네 부모님이 젊던 시절보다 행복할까? 이 말에 긍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오늘날 사회 도처에는 회색 신사가 배회한다. 사람들은 시간의 가성비란 미명하에 모든 서사를 요약적으로 소비하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모모가 필요하다. 인생이 그렇게나 급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주는, 두 시간의 쉬는 시간을 3분씩 쪼개지 않고 통째로 써도 오히려 좋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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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모〉(1986) 포스터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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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장르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고전문학의 재미를 알리고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수십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출간했다.

교양만화 플랫폼 <이만배>에서 고전 리뷰툰 플러스를 연재하고 있다.

 

 

 

 

 

 

 

섬네일 : 영화 〈모모〉(1986) © 씨네21 http://m.cine21.com/movie/photo_list/?movie_id=11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