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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4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추억 속 즐거움의 소환으로 인생을 더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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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24

추억 속 즐거움의 소환으로 인생을 더 즐겁게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지금은 사회에 녹아든 직장인일지라도 한때는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수한 시절에 즐기던 문화가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문화적 매체는 대개 아동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 되고 나면 으레 아동기 문화도 졸업하고 성인 대상의 문화를 향유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말대로라면 미성년자와 성인의 취미가 철저히 구분되어야 할 텐데, 현실에서 어디 그러던가? 옆자리 직장인은 여전히 마리오 카트를 즐기고 있으며, 한 가정의 가장이 되더라도 《원피스》 같은 소년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당장 나만 해도 이 칼럼을 쓰면서 옆에 닌텐도 3DS를 두고 있다. 그렇다. 어느 정도의 질만 보장된다면, 어린 시절 즐기던 문화는 자라고 나서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매체 자체의 매력에 더해 어린 시절 추억까지 덧입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 문화가 생겨나는 이유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다양한 향수를 성인이 되어서도 소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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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울책보고에서 운영 중인 〈장바구니展〉에서도  〈그 시절, 우리의 책장을 채운 만화책〉이라는 전시 코너가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많은 이용객이 관람도 하고 구입도 한다.  

 

키덜트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게임과 만화, 영화, 소설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고전 이야기를 하는 필자이니만큼 오늘은 그것과 관련 있는 추억을 꺼내려 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취향 역시 어린 시절 즐기던 문화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주변 도서관에는 옛 신화나 문학을 만화로 재구성한 책이 많았다. 지금 20대, 30대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 신화》라든지 ‘능인’에서 나오는 《만화로 보는 세계문학》 시리즈가 그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대표적이지만 그 외에 아는 사람만 아는 만화도 많았다. 내가 가장 열심히 보았던 것은 신화를 만화화한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기에 힘입어 만화 판 이집트 신화나 중국 신화도 나왔었다. 넓은 영역에서 신화에 속하는 성경 또한 만화화된 책이 몇 있었다. 그것들 모두가 그 시절 즐거움이었다. 그리스 신화 만화를 보고서 신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나로서는 제목에 신화만 들어갔다 하면 전부 챙겨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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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그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시리즈를 꼽으라면 《만화로 보는 북유럽 신화》 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정통 판타지에 가장 가까워서 그랬을까? 이전에 트로이 전쟁 편을 보고 또 봤던 것처럼 나는 라그나로크 편을 손에서 떼어놓질 못했다. 덕분에 에다〉라든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서사들을 미리 알았으므로 굉장한 이득이었던 셈이다. 마블 영화가 유행하기 전 이미 토르와 로키를 잘 알았던 것은 덤이다. 순수하게 재미로 본 것이기는 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어릴 적 덕질이 문학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신화나 전설 이야기는 해당 국가의 문학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거대한 장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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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Edda)는 북유럽 신화의 근간이 되는 시와 노래 및 서사시들을 엮은 책으로,

북유럽 신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방대한 자료이다. © 위키백과

 

이 모든 건 오래전 이야기이다. 대부분 시리즈는 이미 한참 전에 절판되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 또한 그림체가 바뀌어버렸다. 다행히도 관심 있는 책들을 많이 사두긴 했지만, 일부 권은 헌책방을 찾아다녀야 했다. 아는 사람들만 알던 좋은 시리즈가 출판을 중지했다는 건 슬픈 일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인기 시리즈들 역시 차차 절판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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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지금도 종종 그 당시 운 좋게 사 모았던 만화들을 다시 들춰보곤 한다. 한때 대사까지 다 외웠던 것들은 이제 반쯤 먼지가 쌓인 채 추억을 되새겨줄 뿐이다. 신기한 것은, 이미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책들이 재밌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에게 북유럽 신화를 입문시켜주고자 집에 있는 절판된 만화책을 함께 읽기도 했다. 20대 후반 둘이서 아동용 만화책을 쌓아두고 읽는 모습은 우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키덜트가 왜 있겠는가? 인생을 조금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 수단이 소중한 추억이라면 안 될 게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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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장르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고전문학의 재미를 알리고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수십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출간했다.

교양만화 플랫폼 <이만배>에서 고전 리뷰툰 플러스를 연재하고 있다.

 

 

 

 

 

섬네일 : 영화 〈토르 : 천둥의 신〉(2011)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