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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4

BOOK&LIFE

[SIDE A] 내 안에 어린이를 살려 두는 일 - 키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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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어린이를 살려 두는 일
 - 키덜트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배우 심형탁은 결혼을 앞두고 자신이 평생 좋아하고 친구라 여겼던 ‘도라에몽’과 통화를 했다. (물론 심형탁의 배우 친구들이 한국판 도라에몽의 성우분께 도라에몽 역을 미리 부탁한 것) 방송 중 도라에몽은 이제 결혼하는 심형탁에게 말한다.

“형탁아! 내 소원은 우리 형탁이가 행복해지는 거야! 그동안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았지 정말 고생 많았어!”

그러자 배우 심형탁은 이렇게 말한다.

“에몽아 나 진짜 열심히 살 테니까 다음에도 내가 힘을 잃었을 때 다시 한 번만 더 목소리를 들려줘!”

학창 시절 심형탁이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해 외로웠던 시절 유일하게 힘이 된 것이 도라에몽이었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꾸준히 이야기해왔기에 당시 이 영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덕심을 가진 사람, 사회에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감명 깊게 전달되었다.
 
☎ 에몽이의 진심어린 응원에 폭풍 오열한 심형탁 © 유튜브 채널A 캔버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존재들과 함께해왔다. 누군가는 캐릭터를, 누군가는 히어로를 마음에 품은 채 힘든 날들은 히어로같은 마음으로 이겨냈고, 어느 날은 캐릭터들과 단짝 친구가 되어 소통해왔다. 어린 시절 자신을 지지해줬던 존재들과 성인이 되었다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삶이 바로 키덜트적 삶이다. 

키덜트란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로 어른이 됐는데도 여전히 어렸을 적의 분위기와 감성을 간직한 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즉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방에 순수한 어린이를 살려 둔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본인의 취향을 강조하고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한국의 많은 연예인 중에서도 심형탁처럼 본인이 키덜트임을 밝힌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이런 키덜트의 성향이 덕후장난감 매니아라는 이름 안에 갇혀 편협한 시선으로 비쳤지만 시대가 바뀌며 많은 사람이 본인이 키덜트임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해받으며 관심사가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더욱 친해지기도 한다.
 
 
아티스트 중에서도 키덜트적 성향이 작품에 반영된 작가들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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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 © Hutchinson Modern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추상 작가이자 몬드리안의 동료였던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ín Torres García)는 구성주의의 선구자이자 벽화 화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조각가로 활동하면서도 알라딘이라는 장난감 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다양한 나무 조각으로 기관차, 동물, 서커스 하는 사람 등 평생을 걸쳐 수백 개가 넘는 디자인의 어린이 장난감을 개발했고 자신이 만든 장난감에 T와 함께 숫자를 붙여 예를 들면 T 528 이런 식으로 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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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의 장난감 © SVMoA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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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기관차를 이용한 5색 구조 Constructivo de cinco colores con locomotora〉

1943 Oil on cardboard 55.5 x 68 cm © artnet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가 나무로 된 장난감에 빠지게 된 데는 아버지에 대한 영향이 크다. 그의 아버지는 몬테비데오 변두리에서 종합 상점을 운영했다. 어린 토레스 가르시아는 아빠의 가게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나뭇조각들을 가지고 놀며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고 대학 시절 교수님의 권유로 나무 장난감을 본격적으로 만드는 것을 시작해 평생에 걸쳐 장난감 연작을 진행한다. 1910년대 스페인에서 지낼 때는 나무가 주된 재료였지만 1920년대 뉴욕에 다녀온 이후와 파리에서 생활하던 시기에는 재활용 물건들도 활용했다. 그는 늘 목수와 협력하여 장난감을 만들고 자신의 작품에 예술적인 장난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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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 클레 Paul Klee © 위키백과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도 키덜트라면 빠질 수 없는 작가다. 추상 회화의 역사에서 거장으로 불리며 많은 후배 화가들의 존경을 받은 클레지만, 사실 파울 클레는 작품이 팔리지 않거나 일거리가 없을 때는 부인을 도와 아들 펠릭스를 돌보는 육아에 열정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남편이 자녀를 돌보는 것에 대해 지금의 시대와는 다른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클레는 세간의 이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펠릭스를 위한 인형을 무려 50개나 만든다. 당시 클레는 목장갑과 솔방울 등 같은 다양한 일상의 재료로 인형을 만들어 아들을 위해 인형극도 진행했었다. 안타깝게도 클레가 만든 인형들이 2차 세계대전 중 사라져 30여 개만 전해지지만, 이 인형들 덕분에 파울 클레가 얼마나 아들을 위해 인형 만들기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 클레는 어린이들의 그림에서 보이는 순수성과 자발성을 존중했고, 본인이 어릴 때 그렸던 작품들을 꾸준히 다시 보며 작업에 영감을 받았다. 자신의 어린 자아를 끊임없이 존중하는 태도는 키덜트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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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Paul Klee, 〈장난감들 Puppets〉 (1916–25) © theHistoryOf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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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Paul Klee, 〈성과 태양 Castle & Sun〉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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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오넬 페닝거 자화상 Lyonel Feininger self-portrait, 1915 © 위키아트

 
이뿐 아니다. 미국 출신 리오넬 페닝거(Lyonel Feininger 1871-1956)도 나무를 활용해 다양한 색의 장난감 기차를 만들었다. 그는 16세에 음악 경력을 쌓기 위해 독일로 이주했지만, 음악보다는 미술에 더 열정을 보였다.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판화 워크숍을 이끌기도 한 페닝거는 나무를 활용해 여러 작은 장난감을 만들었다. 그는 장난감을 만드는 일이 자신을 10대 소년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또한 바퀴 없이 바닥을 슬라이딩할 수 있는 슬라이딩 블록을 고안하고 특허를 취득해 자신만의 나무 장난감 기차 시리즈를 개발해 1913년에는 뮌헨의 제조업자 오토 뢰벤슈타인은 파인잉거의 장난감을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사진3 Lyonel Feininger ,(Three Locomotives, Two Tenders), 1913-14 Carved and painted wood (L x W x H).jpeg

▶리오넬 페닝거Lyonel Feininger의 〈3개의 기관차, 2개의 탄수차 Three Locomotives, Two Tenders〉, 
1913-14 Carved and painted wood (L x W x H) © moellerfin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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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페닝거 Lyonel Feininger의 〈Arcueil의 카니발 Carnival in Arcueil〉,

1911, oil on canvas, 104x95 © 위키아트

 

 

"어른이 되기는 쉽지만, 어린이로 남기는 것은 어렵다."라는 월트 디즈니의 말처럼 키덜트들은 자신 안에 어린이들을 꾸준히 살려 두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놀이나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나아가 연결된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거나 이전에 놓친 취미를 재개하며 이를 통해 자기 계발과 성취감을 얻는다. 마음의 영토가 작아지는 날이면 키덜트적인 마인드로 자기 안에 숨겨진 어린이들을 만나보자. 따분한 현실을 벗어나 삶을 매일 놀이처럼 늘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은 키덜트적인 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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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소통하는그림연구소, 조이뮤지엄 등 여러 미술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미술 에세이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 《하루한장 인생그림》,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미술에게 말을걸다, 처음 만나는 아트컬렉팅등이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트메신저 이소영Emotion Icon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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