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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3

SPECIAL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 스물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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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 

스물두 번째 이야기

 

 

 최종규(숲노래)

작가

 

 

Emotion Icon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은  

헌책을 좋아하는 이가 들려주는 헌책 서평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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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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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으로 들어설 즈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문학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만,

아직 우리나라 청소년문학은 갈 길이 멉니다.

글감을 푸름이(청소년)로 잡기는 하되,

막상 푸른 나날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앞으로 어질게 새빛으로 피어날 만한가 하는 실마리하고는 퍽 멀더군요.

대학입시에 이바지하는 책을 청소년책이라고 씌우는 얼거리가 깊어요.

푸른빛과 푸른철과 푸른꽃을 온마음과 온몸으로 품도록 길잡이로 서는 청소년문학과 청소년책이란 무엇일까요?

어른답게 살아가려고 온삶을 바친 사람들 자그마한 발자취 하나를 차곡차곡 여민 삶글(생활문학)이 오히려

청소년문학이라 여길 만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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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Icon《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

이진희 글, 이규수 옮김, 삼인, 2003. 9.20.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 2003.jpg

 

열여덟 살 즈음에는 어떤 책을 읽으면 어울리려나 돌아보곤 합니다.

열여덟이란, 으레 ‘고2’라 일컫고, 입시지옥이 코앞입니다.

이무렵이면 어느새 책을 내려놓고서 대입시험만 헤아리기 일쑤예요.

그런데 이무렵만 책을 내려놓지 않더군요.

열여덟 살 즈음 책을 내려놓는 푸름이는 스무 살을 맞이하고 서른 살에 이르도록 책을 안 가까이하더군요.

아무리 대입시험을 치러야 하더라도,

책을 턱 놓으면 그때부터 마음이 메마르게 마련이에요.

열여덟 살뿐 아니라 열아홉 살에도,

커다란 시험을 앞두고도,

마음을 사랑으로 새롭게 숲빛으로 토닥이는 책을 곁에 둘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은 2003년에 한글판이 나옵니다.

이진희 님은 일본한겨레(재일조선인)입니다.

일본에서 살며 일본글로 책을 썼어요.

우리 역사를 살피고 밝히는 길을 걷는 동안,

더구나 일본에서 살며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어떤 가시밭길에 수렁에 고비를 넘나들어야 했는지 차곡차곡 풀어냅니다.

문학은, 이웃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피면서 새삼스레 묶습니다.

삶글은, 피땀과 눈물노래를 오롯이 들려줍니다.

여러모로 보면 《해협》 같은 삶글이 외려 푸른글꽃(청소년문학) 같습니다.

모진 너울을 맨몸으로 받아들이며 빙그레 웃고 다시 한 발짝씩 나아가는 하루를 보여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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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Icon《캐테 콜비츠와 魯迅》

정하은 엮음, 열화당, 198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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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중국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 루쉰(노신) 님이고,

어리석게 총칼로 춤추는 독일을 쳐다보며 안타까워 발을 구르던 캐테 콜비츠 님입니다.

루쉰과 캐테 콜비츠는 만난 적이 없지만,

비슷한 물결을 서로 다른 나라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권력자는 아름길 아닌 멍청한 굴레를 뒤집어쓰면서 치닫는데,

숱한 사람들은 거의 넋놓고서 권력자를 좇았습니다.

총칼은 언제나 총칼을 일으킵니다.

총칼은 꿈도 사랑도 안 일으킵니다.

총칼은 도시도 시골도 무너뜨리고,

들숲을 망가뜨리고,

사람들 사이를 갈가리 찢어요.

루쉰 님은 글자락으로,

캐테콜비츠 님은 그림자락으로,

저마다 제 나라 이웃을 일깨우기를 바랐습니다.

총칼 아닌 쟁기를 들어 흙을 일구어야 한다고 외친 두 사람입니다.

총칼 아닌 포대기로 아기를 품고서 돌봐야 한다고 노래한 두 사람입니다.

《캐테 콜비츠와 魯迅》은 오직 미움이 불길처럼 치솟으면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려 드는,

그런 끔찍한 수렁에서 씨앗(어린이·푸름이)을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두 사람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들려줍니다.

오늘날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작은날개(드론)를 띄워 서로 치고받으면 누가 다칠까요?

큰날개(미사일)을 쏘아 서로 다투면 누가 죽을까요?

그저 모두 무너집니다.

참사랑을 들려주는 어진 목소리를 누구보다 푸름이가 듣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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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숲노래)

작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 

사전 쓰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찾아 헌책집-마을책집을 1992년부터 다닌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쉬운 말이 평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곁책》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