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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3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이야기가 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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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이야기가 자라나

 

오은

 

 


새 옷을 갖고 싶어

새 우산을 쓰고 싶어

매일매일

새 마음으로 일어나고 싶어


그래도 새 책보다는 헌책이 좋아

헌책에는 이야기가 있어

봤던 이야기

몸 담가봤던 이야기

마음 쏟아봤던 이야기


아는 이야기

그러나 다는 모르는 이야기

알아서 편하지만

몰라서 두근거리는 이야기


일곱 살 때 읽었을 때는 무서웠고

열두 살 때 읽었을 때는 슬펐어

열다섯 살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감정을

스물두 살 때 직접 품어보기도 했지


헌책을 펼칠 때마다

이야기가 자라나

감정이 솟구쳐

말이 만개해


그때 책 속에서 만난 친구들

잘 지내고 있겠지

언젠가 페이지 밖에서 

어른인 채 만날 수도 있겠지


헌책으로 새 삶을 떠올릴 때면

한 뼘 두 뼘 자라난다

이야기가, 감정이, 내가


페이지가 넘어가듯

새날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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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