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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3

SPECIAL

[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 《소설 목포》+ 우리는 ‘구름기’로 돌아간다, 가끔 혹은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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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북클럽 10월의 도서

소설 목포+ 우리는 ‘구름기’로 돌아간다, 가끔 혹은 자주?

 

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Emotion Icon<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꼭 읽고 싶은 분들,

책을 읽은 후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

책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서울책보고의 공식 독서모임 <금요북클럽>의 주제 도서 이야기로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금요북클럽>이 모이는 날은 매달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서울책보고 금요북클럽에서 10월에 함께 읽은 책은 《소설 목포》였다. 《소설 목포》는 목포를 소재로 8명의 작가가 쓴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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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포에 취재 온 <수사연구> 잡지기자의 눈으로 목포의 달을 바라봤다. 다른 작가들은 목포의 중국집에서 과거의 아버지를 떠올리거나 냉면집에서 과거의 직장동료와 재회한다. 관광지 목포가 배경이니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도 있다. 아이유의 해외 팬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배경지를 찾아간다. 아직 어색한 사이인 두 명의 청춘이 목포로 답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목포에 있는 인물이나 장소를 배경으로 상상력을 펼친 소설도 있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여가수 이난영의 젊은 시절을 재구성한 팩션이 있다. 목포에 있는 미스김라일락다방을 배경으로 콧물 흘리는 긴 코 남자의 맞선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두 다른 소재지만, 북클럽에 참석한 회원님의 말씀대로 《소설 목포》의 소설들은 대부분 목포라는 도시가 외부에서 온 이방인을 안아주고 다독이는 느낌이 있다.


한편 《소설 목포》에는 열다섯 살 남학생 학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도 있다. 바로 《풀빵이 어때서?》로 창비 장편소설 상을 받고 소설집 《사소한 취향》과 다수의 청소년소설도 발표했던 김학찬 작가의 <구름기期>란 소설이다. 

<구름기期>는 1998년 밤새 게임을 하는 걸 좋아하던 열다섯 살 소년이 아버지, 누나와 함께 떠난 목포 여행이 소재다. 주인공의 가족은 아버지의 여행 선언으로 경북 고령에서 전남 목포까지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가 말한 여행의 이유는 그해 대학에 입학한 누나가 이제 멀리 떨어져 살 것이니 가족이 다시 모여 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게임에 미친 중학생 주인공은 툴툴거리지만, 게임을 사준다는 아버지의 말에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목포까지 갔어도 그곳에서 대단한 추억의 사건은 없다. 아버지는 목포 유달산으로 구름을 보러 가자 하지만 열다섯 소년에게 구름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여행이 끝난 뒤 아버지가 게임을 사준다는 약속을 자꾸 미뤄 아쉬울 뿐. 소설은 마지막에 아버지가 1998년에 여행을 가자고 한 진짜 이유가 나오지만 그건 스포니까 남겨두겠다.


한편 <구름기期>는 중학생 학찬만이 아니라 25년 후 마흔에 이른 학찬도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학찬은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목포를 다시 찾는다. 그리고 25년 만에 유달산에 올라 다시 구름을 본다. 


다도해가 보였다. 여보, 구름 정말 멋지지 않아? 

《소설 목포》 <구름기期> 중에서


나는 김학찬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구름 앞에서 멈칫했다. 가끔 내 청소년 시절을 떠올릴 때 뭔가 구름이 자욱하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서였다. 물론 학교 야외화장실 뒤 매캐한 담배 연기를 떠올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뭔가 앞날을 알 수 없고 희뿌옇고 막막한 먹구름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청소년소설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은 싸이월드 시대를 배경으로 영어에 젬병인 고교생이 갑자기 미국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들을 다룬다. 실제 고교 시절 미국에 갑자기 이민을 떠난 재미교포의 사연을 취재해 얼개를 짠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인 오렌지는 실제 미국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청소년 시기에 경험하는 낯선 오렌지빛 먹구름의 세계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 가는 10대의 경험을 너무 삭막하지 않게, 조금은 다독이면서, 유머러스하게 그리려고 했다. 생존의 무게에 대해 미리 겁을 주기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흘러갈 수도 있지, 라고 응원해 주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앞길이 막막한 먹구름 같아도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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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학찬 작가의 <구름기期>를 다시 읽다 보니 청소년 시절이 꼭 막막해서 구름기란 명칭이 어울리는 건 아니겠다 싶다. 


구강기口腔期나 항문기肛門期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구름기期가 있대.

구름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마음,

구름 위 세상을 받아들이는 믿음,

구름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르던 때를 구름기라고 부른대.

흩어져도 다시 만나는 구름을,

똑같은 구름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대.

참, 여보,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

진짜 구름은, 얼룩이 있어야 해,

어두운 부분이 있어야 하얀 구름이 몽실하게 보이지 않겠어? (그럴듯하지?)

그래, 안타깝게도 구름에 올라타면 떨어진다는 과학적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불행해지는 거야. 

《소설 목포》 <구름기期> 중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처럼 내 생각도 마음도 수시로 바뀌고 복잡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기에 구름 위에 올라타는 설레는 마음과 구름 위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있었다. 내 마음을 알고 내 생각과 통하는 나와 같은 구름의 친구를 그리워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 김학찬 작가가 지어낸 구름기란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에 잘 어울리는 명칭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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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기를 쓴 김학찬 작가와 함께 © 박생강


잠깐 그런데 청소년 시기가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구름기가 내게 찾아오는 것 같은 걸까? 나이만 들었을 뿐 여전히 구름에 휩싸이는 그런 기분 말이다. 여전히 청소년의 감성이 남아 있나 싶다가도 그건 아닌가도 싶다. 소설 속 마흔의 학찬이처럼 구름의 다른 면이 보이니까. 어두운 부분이 있어야 흰 구름이 보인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으니까. 그리고 구름에 올라타면 떨어진다는 과학적 진실 혹은 인생의 진실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가끔 아직 구름기가 찾아와서 다행이지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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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 등단했으며

 2017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빙고선비》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