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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2

SPECIAL

[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너도 그래》 + 레트로에 홀린다.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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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북클럽 9월의 도서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너도 그래

+ 레트로에 홀린다. 나도 그래 

 

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Emotion Icon<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꼭 읽고 싶은 분들,

책을 읽은 후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

책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서울책보고의 공식 독서모임 <금요북클럽>의 주제 도서 이야기로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금요북클럽>이 모이는 날은 매달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9월의 <금요북클럽>의 책은 생명과학자 할머니 야나기사와 게이코의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너도 그래》였다. 이 책은 과학자인 할머니가 중학생 손녀 리나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다정하게 알려주는 편지로 이뤄져 있다. 자연과학과 생명의 신비에 대해 감동을 주는 구절이 곳곳에 숨어 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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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밌게도 이 책, 은근히 타임워프다. 일단 저자의 손녀는 중학생이 아니라 책 발간 당시 5살 꼬마였다. 저자는 미래의 손녀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편지로 썼으니 일단 미래로 한 번 가본 셈이다. 또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너도 그래는 우주와 지구의 시작에서 다양한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대해 옛이야기처럼 다정하게 들려준다. 그렇다 보니 이 책과 함께 우주와 지구의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도 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별’과 ‘나’에 대해 감탄한 부분이 있다.


“자, 드디어 우리가 사는 시대에 다다랐어.

우리는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거야.

우리를 만들고 있는 세포와 먹을거리,

그 외의 모든 것도 지구에 있는 것은 전부 다른 별이 부서질 때

지구에 떨어진 원자로 되어 있어.

우리는 별의 조각이야.

별의 조각을 먹고 별의 조각을 입고 살지.”


지구에 태어난 나, 나라는 생명이 이 우주의 별의 조각이라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의 생명만이 아니라 나의 존재도 실은 내가 태어난 후 지나간 시대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그런 화학변화 같은 것 아닐까? 이런 생각 말이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나 걸음마를 끝낸 시절 이은하의 <밤차> 춤을 따라 하고, 80년대에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님)에 다니면서 텔레비전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목격한 나. 9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상경해 매일 명동과 종로, 대학로 주변을 쏘다니던 나.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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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은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 동안 개최된 하계 올림픽이다. © 위키백과 <호돌이>

 

게다가 우리 세대는 문명이 재빠르게 변하는 순간 속에 휩쓸리며 살아왔다. PC통신과 호출기의 등장과 사라짐, 이후 휴대폰의 등장과 다시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그 순간들과 우리는 함께였다. 여기에 IMF 위기와 2002년 월드컵의 열기 같은 명과 암의 순간도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간다. 그 시절에 내가 보고 들으며 겪은 그 순간순간이 나의 사고와 감각을 구성해 어쩌면 소설가 박생강이라는 존재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재밌게도 올해 레트로 특히 내가 10대와 20대를 보낸 90년대가 대대적으로 유행하는 모양이다.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너의 시간 속으로>의 여주인공은 고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를 들으며 1998년으로 되돌아간다. (아, 지금 생각났는데 95년인가 서지원이 파주에 있는 모교에 촬영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남자 스타가 왔는데도 시골 남학생들이 신기한 듯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몇몇 애들은 서지원이 화장실에 갔는데 거기까지 따라갔다는. 그래서 서지원의 죽음이 뭔가 좀 내 주변의 아는 사람 같아 더 먹먹했던 기억도 있다.) 

또 현재 방영 중인 tvN <반짝이는 워터멜론>에서는 남자주인공이 1995년으로 넘어가 당시 고교생인 아버지와 함께 밴드를 한다. 맞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그때 남고생들 사이에 밴드가 유행이었다. (그때 친형이 고교 밴드부 드러머여서 우리 집에도 드럼이 있었다.) 또 쿠팡플레이 SNL에서는 90년대 신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코미디를 보여주기도 했다. (눈물 나게 웃긴데, 문득 대학 선배 누나들의 날카로운 눈썹 라인과 검붉은 입술이 생생하게 떠오르던 순간)


하지만 레트로가 단순한 추억 잠기기 놀이만은 아닌 것 같다. 인간에게는 뭔가 재발견의 욕망이 있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수많은 대중문화에서 과거로 떠나며, 유행의 패턴은 반드시 과거에서 뭔가를 가지고 되돌아오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90년대 후반의 테크노 문화는 돌아오지 않겠지. 그때는 도리도리와 관절꺾기를 즐겼지만 말이다. 아마 언젠가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날 때쯤 다시 그 붐이 일어날지도……) 그리고 어떤 과거의 문화들은 경이로운 레트로로 돌아오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레트로의 경이로움을 체험했는데, 바로 경동시장 스타벅스에서였다. 한약재로 유명한 경동시장 상가 2층에 스타벅스가 있는 것도 물론 신기했다. 하지만 낡은 극장을 개조한 카페인지 극장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하고 널찍한 공간에서. 관객인지 손님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따로 또 같이 커피를 마시며, 내가 태어나기 전 1960년대를 체험하는 것 같은 찐 레트로의 웅장한 바이브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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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동시장 스타벅스 입구에서 ©  박생강


또 최근에 즐겨 가는 을지로 뒷골목의 <커피한약방>도 시대와 공간의 하이브리드가 결합된 낡지만 독특한 레트로 공간이다. 허준 선생님의 혜민서를 개조한 이 카페는 낡고 좁은 공간에 탕약을 우리듯 커피를 우린다. 뻥튀기 기계를 닮은 커피 볶는 기계가 돌아가며, LP에서 흐르는 80년대에 유행한 신스팝 음악이 한약방을 가득 채운다. 이쯤 되면 커피의 카페인보다 혼종 레트로에 홀리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취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쩌면 레트로는 출구 없는 현재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나마 낯설지만 친근한 도피처로 탈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주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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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한약방의 내부 ©  박생강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와 책장에서 낡은 책들을 여기저기를 살핀다. 오랫동안 펼치지 않은 90이 안에서 뭔가 새로우면서도 레트로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음, 일단 눈에 띄는 건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네. 이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무 정보 없이 동화책인 줄 알고 샀다가……)


아무래도 내 책장보다는 지난 시대의 책들이 가득한 서울책보고에 가서 살피는 게 낫지 싶다. 그렇게 해서 서울책보고 구석 서가를 뒤지다 놀랍게도 괴물을 부르는 주문이 담긴 《육포책》이란 조선시대의 서책을 하나 찾아냈다. 물론 이 서책은 진짜 서울책보고에 있는 책은 아니다. 내가 참여하는 앤솔로지에 수록될 예정인 청소년소설 속 서울책보고에 있는 책이다. 그러니 육포책의 존재는 몇 달 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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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 등단했으며

 2017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빙고선비》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