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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2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레트로, 이제는 없는 것들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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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22

레트로, 이제는 없는 것들에 대한 추억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얼마 전부터 <레트로>라는 키워드가 유행했다.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고 현대보다는 예스러운 것에 끌리는 사회 현상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가까운 디자인, 목재와 종이를 이용한 인테리어, 90년대에 유행하던 글씨체 등에 열광했다. 하나같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이다. 

이는 최근의 한국 사회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현상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또 오늘날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21세기를 사는 주인공이 1920년대의 파리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작 1920년대를 사는 사람은 19세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대상은 이제는 없는 것들이다. 레트로적 추억은 사회가 변화하기에 생겨난다.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변화 이전의 과거를 추구하는 건 일종의 관성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당연하게도, 문학가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근대에서 현대로 변화하는 20세기 초에 말이다. 단순히 과거를 추억함을 넘어, 현대보다 과거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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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오늘날 장르문학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호러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호러 작가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엄연한 레트로 애호가였다. 러브크래프트가 자라난 프로비던스는 조지아풍 저택이 자리한 지방이었다. 

한적하고 예스러운 시골은 그 자체로 과거를 품고 있다. 동시대에 미국에선 환락적인 대도시가 생겨나고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시의 일이었다. 시골에서 정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현대란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는 결혼하며 뉴욕에 오고야 말았는데, 그는 동시대의 실상을 보고 깊이 절망했다. 그에게 있어 이상적인 장소는 옛 저택과 계급적 요소가 살아있는 지방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층빌딩과 지하철, 물밀듯이 몰려드는 노동자들은 아니었다. 이후 현대와 과거의 극명한 차이는 그의 작품세계에 영감을 부여한다. 아마 러브크래프트에게 재산만 좀 더 많았다면 방 안에 각종 고전적인 수집품을 사 모으지 않았을까?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현대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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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등의 유령 이야기를 쓴 영국의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는 좀 더 사회적인 경우이다. 그는 19세기 중후반에 태어나 20세기 초중반까지를 살아간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전통적 빅토리아 시대가 쇠락하는 것을 보았다. 저택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들은 사라졌으며 자동차가 생겨났다. 주변 모든 것은 현대적 사회로 변화했다. 적어도 제임스의 눈에 그런 사회는 조금도 낭만적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인생 자체를 레트로에 바치다시피 했다. 과거의 문서를 분석하는 서지학을 공부했고 결국 케임브리지의 교수가 된 것이다. 서지학은 그 자체로 보수적인 학문이었고 그가 평생 몸담은 케임브리지 역시 보수적인 상아탑이었다. 제임스는, 시대가 물밀듯이 변화할 때도 누군가는 과거에 머무른다는 것을 사례로써 보여준 것이다. 그의 인생관을 반영하듯 제임스의 단편에는 20세기의 흔적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은 옛 성당이 자리한 지방 도시이며 사람들 역시 19세기처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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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 모음집에서는 어디서나 등장하는 작가.

유령과 초자연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가 바로 몬터규 로즈 제임스이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가져왔으나, 근본에 있어서는 현대인들도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얼마 전에 유명한 레트로 콘셉트 카페를 다녀왔다. 목재 위주의 내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환경, 인문학적 요소를 강조하는 광고까지. 하나같이 시대착오적임에도 이러한 장소는 SNS에서 큰 인기를 끈다.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어느 순간 아날로그를 찾고 있다. 어느 시대이건, 사람들의 뿌리는 과거를 파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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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장르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고전문학의 재미를 알리고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수십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출간했다.

교양만화 플랫폼 <이만배>에서 고전 리뷰툰 플러스를 연재하고 있다.

 

 

 

 

 

섬네일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2)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7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