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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2

BOOK&LIFE

[SIDE B] 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레트로 문화는 인간다움을 향한 그리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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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레트로 문화는

인간다움을 향한 그리움이 아닐까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은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교수이자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인 필자의 글을 통해,

치유, 개선, 회복의 방법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남자주인공이 처절하게 외치던 명대사가 있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 한마디는 우리들 가슴 속에 커다란 울림을 주면서 확 꽂혔다. 

모두 한 번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지 않을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라고 말이다. 삶의 다양한 순간들에서 시련을 겪으며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때로는 과거의 선택이 후회스럽고 미련이 남아 다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도돌이표처럼 해보기도 한다. 

 

그런 말이 있다. 어릴 때와 젊었을 때는 미래를 꿈꾸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꾸 과거를 얘기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벌써 중년에 훌쩍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만나면 현재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의 비중에서 점차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나간 과거를 얘기하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도교수님이 정년퇴임을 하는 자리에 오랜만에 선후배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현재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릴 적에 대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어땠는지가 주를 이루었다. 마치 작정하고 현재를 잊고 과거로 돌아간 마냥,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모두들 흥겹고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내게는 그 경험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아, 이제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는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워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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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과거를 얘기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과거를 얘기하는 게 더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젊었을 때는 과거를 향유하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초중고 학창 시절,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사회 초년병이던 시절 모두 어설프고 미숙해서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였다. 실수하고 걱정했고, 처음 마주하는 경험들에 당황스럽고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지 몰라 긴장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숱하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죽을 것 같은 아픔과 고통을 느낀 적도 많았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상처들이 아팠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인가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성장했고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들이 받아들여지고 소화되지 못하던 것들이 소화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좋은 것들이다. 그것은 갖고 싶지만, 지금은 가질 수 없는 젊음이고 순수이며, 열정이고 패기이다. 함께 웃으며 즐거웠던 추억이고,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 보았던 설렘이고, 때로는 가슴 시리게 아팠던 슬픔의 기억이다. 현재가 힘든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불확실 때문이기도 한데, 과거는 이미 결정되어 버렸기에 더 이상 조마조마하며 긴장하고 불안해하지 않는 분명함이 있다. 명료한 과거를 통해 편안함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 또한 중년을 넘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기대와 희망보다는 지나온 삶의 과거를 정리해야 하는 시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자신의 지나가 버린 황금기를 다시 마주하고 놓쳤던 좋았던 것들을 다시 또는 새롭게 향유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고 놓쳤던 것들을 다시 복원시키고 소유하고자 하는 미련으로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제 과거를 즐기는 것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사이먼 레이놀즈가 쓴 《레트로 마니아》에서는 레트로 문화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과 패션뿐 아니라 놀이와 게임, 드라마와 영화 등의 다양한 콘텐츠에서 과거에 유행하던 스타일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미 그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반가움과 그리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현재의 힘겨운 삶에서 잠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의 불편함과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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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반에 가득한 레트로 문화를 철저히 파헤친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2017)

 

젊은 세대들에게 기성세대의 과거는 새로움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과거 즉 아날로그 시대의 문화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와 딸은 패션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입었던 청청 스타일을 입으며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즐겁고, 딸은 현재 유행하는 새로운 스타일로 청청 패션을 입는다. 이처럼 과거는 다른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우리는 서로 다른 느낌으로 과거 스타일과 콘텐츠를 함께 공유한다. 게다가 매체의 발달로 과거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언제든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현재 공존하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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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청청패션은 그 누구도 소화하기 어렵다는 금기의 패션이자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 tvN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 

 

무엇보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어 있는 현재에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문화는 불완전함의 미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을 대표하는 기계 및 인공지능(AI)과 대비되는 아날로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인간다움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과거의 아날로그 문화는 깔끔하지 않고 어설프며 세련되지 않다. 그러나 그 미숙함과 어설픔이 주는 따뜻함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인간다움이 친근하고 편하다. 미숙하고 불완전한 자신이 그래도 괜찮을 것만 같고, 있는 그대로 수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답지 않은 차갑고 거리 두는 디지털 시대에 따뜻함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인간다움을 찾아 과거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지영 교수 프로필 섬네일_최종.jpg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도록 코칭하고 있다. 

《정서 조절 코칭북》, 《생각이 크는 인문학:감정》, 《어린이 심리 스쿨》,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등의 다수의 감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KBS1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의 <뉴스브런치 부설 심리연구소>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이지영 교수의 감정코칭>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섬네일 : 영화 〈박하사탕〉(1999) 포스터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photoId=1239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