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1
COMMUNITY[시민 에세이] 나에게 헌책은_책갈피처럼
시민에세이 나에게 헌책은
책갈피처럼
이주희
시민 필자
시민에세이 〈나에게 헌책은〉은 시민의 참여 원고로 만들었습니다.
아련한 기억 속 헌책과 헌책방에 얽힌 추억, 서울책보고를 이용하시면서 느낀 점 등
헌책과 헌책방, 서울책보고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보내주시면
매월 한 편의 사연을 선정해 서울책보고 웹진에 게재합니다.
우리 집 베란다 한편에는 커다란 책장이 있다. 책장의 책 대부분은 내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 대량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동화책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손때묻은 책도 있고 조금은 생소한 책도 있다. 이제 더는 읽지 않는 책들이기에 온라인에 중고로 저렴하게 내놓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하고 싶다는 분이 계셔 책들을 깨끗하게 정리해 문 앞에 내놓기로 했다.
▶ "혹시 버리기가, 내보내기가 어려우신가요?"
노자와 야스에의 《버리는 연습, 버리는 힘》에서는 '버리는 힘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에너지'라고 말한다.
정말 오랜만에 책들을 꺼내 펼쳐보니 책에 얽힌 기억이 화르르 떠올랐다. 그림을 보는 순간, 잊고 있던 그때 그 조그맣던 내가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들 대부분은 찢어지거나 밑줄이 그어져 있는 등 상태가 온전치 못했지만, 그곳엔 추억이 책갈피처럼 끼어있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선생님 놀이를 하며 읽던 추억(몇몇 책에는 친구들 교재라며 각자의 이름도 써놓았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책을 동생과 나란히 앉아 동생에게 읽어주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나하나 펼쳐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중고 매매 사이트에 판매 글을 올린 게 아쉽단 마음이 들어 책들을 더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것 같다.
▶ 내 어린 친구들, 함께 했던 교실, 그 서가에 있던 학급 문고들, 이제는 모두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지금도 서울책보고 서가에는 그 시절 그 추억을 일깨우는 헌책이 가득하다.
동화책으로 빽빽한 짙은 나무색 책장에는 소설책도 드물게 꽂혀 있었는데 그중 빨간색 양장 책은 내 기억에는 없는 책이라 조심히 펼쳐보았다. 맨 첫 장에 예상치 못한 인물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우리 삼촌이었다. 바로 엄마께 그 책에 관해 여쭤보았다. 그 책은 예전에 엄마가 삼촌께 선물하신 책인데 한참 뒤 어쩌다 보니 여기 꽂혀 있는 것 같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삼촌께서 많이 읽으셨는지 책의 색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책등은 거의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에서 삼촌에게 그리고 긴 세월을 돌아 나에게 온 책은 한 아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흐름이 너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팔지 않고 한쪽에 빼놓았다.
어느새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나는 그제야 빠르게 책들을 묶어 문 앞에 내놓았다. 어깨도 눈도 피로해서 텅 빈 책장은 내일 내리기로 하고 자리에 누웠다. 꼬질꼬질한 동화책 몇 권과 빨간색 양장 책과 함께.
이 책들이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가 아이들의 추억이 담기기를.
▶ 헌책으로 추억이 전해지고, 또 그 헌책에 새로운 추억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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