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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1

SPECIAL

[책장이 있는 영화 이야기] 좋은 습관이라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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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이라는 욕망

 

윤성은

영화평론가, 작가

 

Emotion Icon영화학 박사이자 영화평론가인 필자가 영화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장이 있는 영화 이야기>는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운동

📍독서

📍외국어 공부

📍일기 쓰기

...

 

내가 연초에 세우는 계획들이다. 건강과 자기 계발에 초점이 맞춰진 이 리스트는 모두 단기간에 승부를 보아야 하는 목표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해서 해 나가야 할 좋은 습관에 가깝다. 그러나 해가 바뀐 지 며칠 안 되어 이 원대한 계획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일 년 내내 다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송년회 시즌을 맞기가 일쑤였다. 새해 벽두마다 같은 목표 세우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실패가 습관이 되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을까. 

위로가 있다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각자 원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 혹은 습관 들이기에 관한 자기계발서들이 수십 년 동안 사랑받아왔고, 지금도 계속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김영사)처럼 구매욕을 자극하는 제목을 달고서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자기계발서를 잘 읽지 않는다. 오래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을 때 친구가 선물한 실패는 없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참, 다 아는 얘기를 거창하게도 한다는 인상을 받고 나서부터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실행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법처럼 반세기가 넘도록 별로 변하는 내용도 없는데 신간이 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그래도 얼마 전 30주년 기념 에디션을 낸 스티븐 코비의 책은 제목에 성공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들춰 본 적이 있다. 역시 실망이었다. 위인전을 읽듯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한 롤모델을 찾기 바랐는데, 

💭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 끊임없이 쇄신하라

등의 오래된 잔소리만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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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계발서의 고전으로 알려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출간 25주년 뉴에디션(문화서점 / 6,000원) 

2023년 올해에는 출간 30주년 기념 에디션이 나왔다.

 

최근에 나는 왜 내가 좋은 습관을 들이지 못하는가에 대해 꽤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내 또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일주일에 운동을 두세 번씩 나가고, 한두 권의 책을 읽고, 주말에는 그럴듯한 취미 생활도 즐긴다고 하던데, 심지어 그 와중에 대학원까지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대체 뭐가 문제길래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나에 대한 실망은 끈기 부족, 목표 의식 부족, 게으름 등 부정적인 단어들로 이어졌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져 보면 그런 단어들은 사실, 지금까지의 내 삶과 맞지 않는 것들이다.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잘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비교적 어릴 때 학위를 마치고 내 분야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저런 단어들과 멀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학교 대표로 육상선수로 훈련받았던 경험 때문인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승부욕, 근성 같은 것도 있었다. 어쩌면 항상 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고 채근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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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나를 탓하고 나에게서만 문제를 찾는 것은 스스로 떼어 없앨 나쁜 습관인지 모른다.

 

나를 탓하는 대신 지인들과 내 생활을 비교해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의 특수성이 일차적으로 프리랜서라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업체와 계약해서 수개월 이상 하나의 일에 매달리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 해야 할 일이 달라지고, 그 일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는 프리랜서로서 규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PT를 받으려고 트레이너와 약속을 해놓았을 때도 그날 갑자기 방송 출연이 잡히거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원고를 못 끝냈을 때, 나는 일을 택할 수밖에 없다. 고용의 안정성이 없으니 들어오는 일을 운동 때문에 안 할 배짱이 없는 것이다. 매일 지옥철을 견디며 출퇴근의 고단함을 안고 사는 직장인들이 내게는 늘 대단해 보였지만, 대부분 직장인은 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그 이후에는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혜택도 누린다. 직종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주말이나 휴일까지 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휴일의 존재조차 거의 잊고 사는 내가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맥스웰 몰츠는 성공의 법칙(1960)에서 습관을 들이려면 21일 동안 그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뇌에 습관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습관이 몸에 배기까지에는 12주라는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내일 일정도 계획한 대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는 나에게 좋은 습관을 갖는다는 것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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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시오페아〉(2022) 포스터

 

그렇다고 일의 특수성을 방패 삼아 습관 들이기를 완전히 단념할 수는 없다. 신연식 감독의 〈카시오페아〉(2022)에는 30대에 치매에 걸린 싱글맘 변호사가 등장한다. ‘수진’(서현진)의 아버지 ‘인우’(안성기)는 자신보다 먼저 몹쓸 병을 앓게 된 딸을 혼자 돌보며 일정한 시각에 같은 일을 반복시킨다. 인우 자신이 시계 같은 삶을 살면서 자기 몸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던 수진은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규칙적인 생활에 들어간다. 수진의 뇌는 빠른 속도로 굳어가지만 알람 시계를 이용해 장보기, 운동, 약 먹기, 양치질,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일상을 몸에 익히면서 그녀는 혼자서도 아주 기본적인 것은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어느 날, 인우에게 사고가 나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수진을 살려준 것은 바로 이처럼 아주 사소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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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칙적인 사소한 습관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진이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영화<카시오페아>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실현 가능한 습관 또한 사소한 것들인지 모른다. 그동안의 새해 결심들은 스케일이 너무 커서 포기도 빨랐지만, 물을 자주 마신다든가, 바른 자세로 앉아서 글을 쓴다든가 하는 행동들은 불규칙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만들어갈 수 있는 습관을 들이고, 꼭 새해가 아니어도 다시 쉽게 결심하고 실천하는데 부대낌이 없다, 수진에게처럼 위기가 닥쳤을 때, 노화가 많이 진행되었을 때 지금부터 들여놓은 그 작은 습관들이 나를 구원해 줄지 모른다. 무엇보다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평소에 좀 더 나를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부터 들여야 할 것 같다.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처럼, 마음도 고쳐먹는다는 게 참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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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작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그런대로 행복한 영화 호사가

지금은 문화 전반에 관해 얘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도 만들고 있다.

여행 에세이집 《세도시 이야기》(공저), 짧은 소설로 릴리 이야기를 썼다.

 

 

 

 

 

섬네일 : 영화 〈카시오페아〉(2021)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9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