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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0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과몰입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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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20

과몰입의 에너지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독자분들이 성인이라면 현재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생각해보자. 해당 업무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정을 지닌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애석하지만 대부분 성인이 타성적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흡사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처럼 말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취미가 그대로 직업이 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업무에 헌신하고 그 속에서 기꺼이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지닌 에너지는 과몰입에서 출발한다.

 

과몰입은 현대에 와서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무언가에 과하게 몰입한다는 말이 꼭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은 않지만, 소위 덕질을 한다면 얼마든지 장점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영화에 과몰입했다면 영화 오타쿠가 될 것이고 과학에 과몰입했다면 과학 오타쿠가 될 것이다. 멋진 건물에 과몰입했다면 건축 오타쿠가 될 수도 있다. 열정이 있다면 무엇에든 몰입할 수 있다. 그 덕에 과몰입의 분야는 무한하고, 과몰입의 대상은 즐거운 취미로 자리 잡는다. 그것이 이어지면 어느 순간 직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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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중편소설 〈변신〉은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이다.

카프카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프카의 대표작이다.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1998(밍키서점 / 3,000원)

 

과몰입의 결과물은 각종 문학에서 확인된다. 유령 이야기로 유명한 영국의 호러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단편선을 펼쳐보자. 단편 속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그들은 대개 고고학자이고 지방의 오래된 성당과 유적을 찾아 헤맨다. 휴가 중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골동품 연구에 아낌없이 시간을 쏟는다. 행운이 따라 희귀한 보물을 발견하면 환호성을 지른다. 말 그대로 과몰입이 직업으로 발전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장르 특성상 그 열정이 공포스러운 경험으로 이어지는 게 애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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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있다. 과몰입의 직업화로 가장 유명한 가상의 인물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이다. 홈즈는 어릴 적부터 특유의 관찰력으로 상대를 파헤쳤고 습관처럼 무언가를 추리했다. 그 관찰의 과몰입을 생계로 연결 짓고자 홈즈는 아예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어쨌든 그 시대에 탐정이나 수사 고문이란 직업이 보편화되진 않았으니 말이다. 홈즈가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특유의 직업적 열정도 한몫할 것이다. “일 자체가 보상이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매력으로 다가온다. 몰입에 쓰이는 열정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연료이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도둑질에 대한 열정으로 프로 도둑이 된 아르센 뤼팽도 있지만, 이쪽은 합법적인 직업이 아니므로 보류하도록 하자.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열정이 현실에서 오래가지는 않는다. 사람은 늙어가고 여기에 사회생활의 피로가 겹친다. 대학 때 열정으로 눈을 빛내던 청년이 몇 년이 지나면 흔하디흔한 직장인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료 역시 소모된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은퇴하는 나이까지 과몰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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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낭만과 열정은 짓밟히고 우울한 뉴스가 흥하는 요즘이다. 미디어가 전례 없이 발달하여 과몰입의 대상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해졌으나, 동시에 그런 열정이 무시되는 물질주의, 허무주의도 널리 퍼졌다. 그러나 일생을 덜 우울하게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긍정적인 몰입이 필요하다. 이것은 근본적인 풍요, 행복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필자 역시 이 과몰입이 직업이 된 사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고전문학에 과몰입을 계속한 끝에 고전을 리뷰하는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 열정은 이미 소모되었느냐고? 글쎄, 다행히도 아직은 충분히 많이 남은 듯하다. 그러므로 고전 리뷰툰의 독자들도 이 팍팍한 시대에 몰입의 에너지를 고전 덕질에 써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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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지었다.

 

 

 

 

 


섬네일 : 영화 <셜록 유령신부>(2015)의 포스터 중 일부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98115#photoId=1063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