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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9

SPECIAL

[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 6월의 도서 <김치 공장 블루스> + 나의 작은 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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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북클럽 6월의 도서

《김치 공장 블루스》

+ 나의 작은 서점들

 

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Emotion Icon<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꼭 읽고 싶은 분들,

책을 읽은 후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

책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서울책보고의 공식 독서모임 <금요북클럽>의 주제 도서 이야기로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금요북클럽>이 모이는 날은 매달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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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정광태의 <김치 주제가> 가사 중(클릭하면 들려요.)

 

 

서울책보고 금요북클럽 6월의 도서는 김원재 작가의 《김치 공장 블루스》였다. 작가는 이태원에서 일하던 유능한 카피라이터였는데, 파주에 있는 어머니의 김치 공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이후 김치공장에서 다양한 삶의 환경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배워간다. 각기 다른 인종과 연령대를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티키타카가 이 책의 재미다. 읽다 보면 김치의 맛과 다양한 삶의 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느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결국 홈쇼핑에서 김치를 주문하고 말았다. 


나는 또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인생의 어느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익숙한 환경을 떠나 전혀 다른 환경으로 뚝 떨어지곤 한다. 그게 힘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앨리스나 걸리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낯선 환경은 빡센 동시에 뭔가 사람을 붐업시키는 힘이 있는 셈.


나 역시 소설가로 10년 넘게 활동하다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듯 다른 길을 찾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당연히 쉽게 다른 길은 떠오르지 않았지만(그럴 수밖에 10년 넘게 글만 쓰고 글 쓰는 것만 가르쳤는데), 일단은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취업을 해야 했다. 단 글을 읽거나 쓰거나 가르치는 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당시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회원제 피트니스의 사우나 관리 일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내게 특별한 기술은 필요 없어 보이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운동복과 수건을 접어야 하는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각 잡는 기술에 소질이 없었기에 늘 팀장님께 혼나기 일쑤였다. 마흔 다 되어서 능력 없는 존재로 보이는 건 좀 비참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영혼 없는 서비스 정신으로 친절한 직원이 되어야겠다고. 특히 그곳은 1% 상류층 회원님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친절의 스킬이 중요했다. 의외로 나는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영혼 없는 서비스를 생각보다 맑은 정신으로 할 수 있었다. 그 세계가 내게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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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는 주인공이 갑의 사회로 던지는 메세지는 경쾌하지만 꽤 신랄하고 맵다.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하여튼 그곳에서 1년 정도 일하면서 지루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중 흥미로운 지점들을 접했다. 벌거벗은 상류층 어르신들의 뱃살과 속살에 숨겨놓은 이야기랄까? 희한하게도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장편소설이 바로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인데 왜 안 보는지 소설에 딱 한 줄로 설명되니 실망하실 수도 있겠다. 

 

 

한편 《김치 공장 블루스》를 읽은 뒤 나는 하나의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공력이 들어가는 사실에 감탄했다. 동시에 최근 나와 가장 친숙한 사업체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중에는 출판사도 있지만 작년부터 가까워진 작은 서점들도 있었다. 


작년에 나는 서울에 있는 두 곳의 문학 전문 서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했다. 그곳에 머물면서 작은 서점이 주는 공간적 매력에 빠져들었다. 큰 서점이 대형카페 같다면 작은 서점은 뭔가 개인이 원두를 로스팅하는 카페 같은 느낌? 뭔가 자기만의 자존심으로 책을 골라서 선별하는 것이 작은 서점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서점 안에서 성격이 맞는 독자들과 서점주인 간의 교류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것들이 좋았다. 책이 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온라인 감성이 아닌 오프라인 감성으로 서로 교류된다는 점들 말이다.


 

<서점 로티>는 소설가 이갑수 씨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한국 작가의 책은 사인본만 판매한다. 이갑수 씨는 이곳에서 직접 소설 창작 강의를 꾸려간다. 이곳에 많은 문청이 찾아오는 이유는 비단 이갑수 씨의 강의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전설의 등단검이라는 게 있어서 이 칼을 휘두르면 등단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직접 사인하러 온 작가들도 그 검을 한번 휘둘러서 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나 역시 생각보다 무거운 등단검을 힘겹게 한 번 휘두른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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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두르면 등단한다는 전설의 등단검 ⓒ 박생강

 

<책방 봄>은 시인 지망생 아내와 과거 인도여행의 달인이었던 남편이 운영하는 문학 전문 서점이다. 문학 전문 서점답게 오래된 시집, 소설책부터 가장 최근의 트렌디한 문학 서적까지 두루 갖춰놓은 곳이다. 뿐만 아니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탁 트여 있는 인조 잔디 깔린 푸른 공간은 봄날의 캠핑장 같은 느낌을 준다. 캠핑장에 누워 책 한 권을 읽고 싶은 로망이 있는 독자라면, 그냥 <책방 봄>을 방문하면 된다. 저렴한 가격에 주인이 직접 내린 커피도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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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서 독서를 하는 느낌을 얻고 싶다면 어서 찾아오세요. ⓒ 박생강

 

<책방 봄>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문학을 위한 복합공간을 지향한다. 젊은 시인, 소설가들을 만날 수 있는 북토크나 낭독회 같은 프로그램들을 매달 선보인다. 나는 그리 젊은 문학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북토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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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점에서 소규모의 독자들과 책 이야기를 하는 건 뭔가 세상에 나온 내 책이 새로운 맛으로 익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몇 달 동안 작업해 온 책과 작별 인사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김치공장에서 나온 김치가 소비자에게 넘어가면 나날이 다른 맛으로 변해가듯, 내 책 역시 독자의 손에 들어가면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책으로 남게 될 테니.  

 

 


바뀐 프로필 섬네일.jpg

 

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 등단했으며

 2017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빙고선비》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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