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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9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 _반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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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_반려 책


  

                        오은

 

 

제주 서귀포에는 ‘고요편지’라는 책방이 있다


이름처럼 고요할까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고 싶을까


문 여는 손이 떨린다

온몸을 일으켜 세우는 만남


커피 냄새, 나무 냄새, 종이 냄새……

연필 깎는 소리마저 냄새로 들려오는 곳

나무에서 시작된 냄새를 잊지 않는 곳


새 책 냄새가 진동하는 곳을 지나면

헌책들이 꽂혀 있다

헌책이란 말 대신 쓰여 있는 말, 반려 책


헌책의 낡은 느낌이

반려 책에서는 손때가 된다

헌책의 ‘이미 사용한’ 감각이

반려 책에서는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


이미를 그저로 만드는 말, 반려


편지지를 펼쳐

그 위에

내가 아는 가장 고요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


아직 활자가 되지 못한 냄새가

여기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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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