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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8

BOOK&LIFE

[SIDE B] 팬데믹 이후 일의 세계에서 지켜야 하는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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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팬데믹 이후 일의 세계에서 지켜야 하는 한 가지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은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교수이자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인 필자의 글을 통해,

치유, 개선, 회복의 방법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3년 동안,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서로를 멀리하며 살았다. 그리고 절대로 오지 않을 것만 같던 팬데믹 이후의 삶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답답하고 어두웠던 기나긴 터널 밖으로 나와 마스크를 벗고 서 있노라니,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과 수많은 사람 틈 사이에서 조금은 낯설고 어리둥절해 머리가 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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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팬데믹을 지나 겪는 사람의 파도가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하다. ©연합뉴스

 

과연 우리의 삶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팬데믹 동안 격리와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을 쉽사리 만나지 못한 채 그리워해야 했고 때로는 고독하고 외롭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격리와 거리두기의 문화가 일과 직장 생활에서 이전에는 가당치 않았던 상황을 부득이하게 허용하면서 새로운 직장 문화를 탄생시켰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유연근무제가 보편화되었고,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일을 하는 재택근무제가 도입되었다. 이게 웬일인가. 정시에 출근하지 않고 자신의 사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하고 바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감정을 오랫동안 연구하며 책을 쓰고 강연을 해온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전국 각지에서의 강연 요청을 가능한 거절하지 않았다. 서울, 경기는 물론 멀리 대구, 부산, 광주, 제주까지 강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다녀오곤 하였다. 부산이나 제주 같은 경우는 2시간 강의를 위해 새벽에 움직여서 밤에 돌아와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면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거다. 내 연구실에서 일하다가 약속된 시간에 컴퓨터 화면을 켜면, 전국 각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저명한 강사의 워크숍을 직접 가지 않아도 집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심사나 회의는 물론 전국 어디에 있는 내담자와도 화상을 통해 깊이 있는 심리상담이 가능했다. 이 얼마나 달콤하고 편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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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에서 촉발된 비대면 기술의 발전은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 삶의 가장 커다란 두 가지 축은 일과 개인적 삶이다. 일은 의식주 등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을 창출하여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성취감과 심리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도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고성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일과 조직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해야 했고, 일을 위해서 연인, 가족 등 사적 삶은 때때로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고도 성장했고, 2023년 IMF 기준으로 세계 경제 규모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직장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MZ 세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고, 많은 역량을 쌓았다. 더는 생계를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하며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다. 게다가 그들이 갖춘 능력과 역량보다 저성장 기조로 고용이 감소하였고, 주어진 기회들은 MZ 세대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즉 일과 성취를 통해 삶의 행복을 얻을 가능성이 작아졌고, 투자한 것에 비해 기대되는 보상이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축, 개인의 삶이 중요해졌다.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재미있는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얻는 자기 행복이 중요해졌다.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느니, 그보다는 쉽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MZ 세대의 소확행, 욜로, 워라밸, 가심비라는 신조어로 대표된다.(신조어의 뜻이 궁금하시면 각 단어를 클릭해보세요.) 더는 붙박이 직장 생활을 위해서 자신의 사적 관계나 시간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다양한 근무 형태의 직장 생활이 가능해졌고, 인터넷과 함께 정보력의 발달로 취직이 쉬워진 점도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다양한 일자리가 휴대폰 안에 펼쳐지고, 지원서를 올려놓으면 조건이 맞는 곳에서 제안도 온다. 또한 안정된 실업급여 제도를 통해, 일을 그만둔 이후의 생계에 대한 걱정 또한 덜어졌다. 한마디로 취직과 사직이 용이해진 것이다. 이는 조직이나 회사, 즉 고용주의 입장에서 굉장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꼴이 되었다. 신입사원을 고용하고 훈련하는 과정에는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 무엇보다 돈이 들어간다. 쉽사리 그만둘 수 있는 상황에서 투자한 비용을 잃을 수 있는 높은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다. 개인 즉 피고용인의 입장에서도 사직한 이후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보장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라면, 다른 수많은 사람도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직장 내에서 이직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직장 내 인간관계 갈등이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인간관계 갈등으로 조직의 분위기나 생산성이 위태로워지는 가능성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고용할 때 계약직을 늘리고 있다. 인간관계 갈등은 사실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는 데서 비롯된다. 의견이나 입장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는 대화방식과 일 처리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조언이나 충고, 명령이나 강요, 경고나 위협,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등의 대화방식은 상대방의 경계를 침범하여 분노를 유발한다.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 뿐 아니라, 함부로 대해진 것만 같아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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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힘든 것은 버텨도, 사람 싫은 것은 못 버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0% 이상이 일이 아닌 인간관계 문제로 회사를 떠난다고 한다.

©금강일보


자존감은 인간이 세상 밖으로 나가 도전을 하고 대처하게 만드는 힘이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무너지는 순간, 사람은 일할 동력을 잃게 되고 설 자리를 잃는다. 일로 맺어진 관계를 그만두게 되는 상당한 이유가 바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거라는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실천해야 한다. 생산성을 위한 조직의 부품, 일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나와 다른 성격을 갖고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며, 다른 경험을 통해 다른 생각을 가진 내 동료를 최소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태도를 가져보자.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앞으로의 일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 일의 터전이 조금 더 안전하게 느껴지고, 그 안정감 속에서 개인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직과 국가의 생산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지영 교수 프로필 섬네일_최종.jpg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도록 코칭하고 있다. 

《정서 조절 코칭북》, 《생각이 크는 인문학:감정》, 《어린이 심리 스쿨》,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등의 다수의 감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KBS1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의 <뉴스브런치 부설 심리연구소>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이지영 교수의 감정코칭>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