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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7

SPECIAL

[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 4월의 도서 《나의 독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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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북클럽 4월의 도서

《나의 독산동》

 

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Emotion Icon<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꼭 읽고 싶은 분들,

책을 읽은 후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

책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서울책보고의 공식 독서모임 <금요북클럽>의 주제 도서 이야기로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금요북클럽>이 모이는 날은 매달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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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독산동》, 유은실 글, 오승민 그림, 문학과지성사 @고래서점_4,600원 


금요북클럽 4월의 도서는 유은실 작가가 쓰고 오승민 작가가 그림을 그린 《나의 독산동》이었습니다. 

《나의 독산동》은 과거 공장이 많은 독산동에 살던 어린아이가 바라본 동네 이야기죠. 선생님은 시험 문제로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어떻겠느냐는 문제를 냅니다. 그 정답은 3번 공장이 많은 동네는 시끄럽고 살기에 나쁘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틀려서가 아니었죠. 공장이 많은 동네 독산동이 너무나 좋았으니까요.

 

이웃에 공장이 있으면 친구 엄마 아빠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밥도 주고 숙제도 해준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공장 앞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다 다쳐도 친구 엄마가 나타나 치료해 주기까지. 또 친구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돈도 주시고요. 인형공장에서 잘못 만들어진 곰 인형을 선물로 받아 세상에서 하나뿐인 인형으로 재미있게 놀기도 합니다. 물론 곰 인형이 눈이 없을 때는 단추공장에서 불량단추로 눈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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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처럼 가까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웃사촌입니다. TVN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저는 《나의 독산동》을 읽으면서 저의 어린 시절 풍경 그림들이 삭삭 스쳐 갔습니다. 이처럼 《나의 독산동》은 독산동을 지나 가상의 《나의 어린 시절》 그림책으로 인도해줍니다.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 여러분만의 유년이 담긴 그림책을 상상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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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산동》 중에서

 

내친김에 저의 어린 시절 풍경 그림책인 《파주, 금촌》을 펼쳐볼까 합니다. 

아마도 오르막길 골목과 크리스마스 트리와 바다가 그 그림책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금촌 시장에서 세제한의원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오르막길을 중심으로 언덕들이 거미줄 같은 작은 골목들로 이어졌죠. 그 골목을 미로처럼 돌아다니면서 놀았던 것이 유년의 행복한 추억 중 하나입니다. 

연말에는 밤에 대문 밖에 나와 골목에 서 있으면, 오르막길 꼭대기쯤 있던 교회의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밤하늘에 울긋불긋 반짝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입김 호호 불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밤하늘의 트리를 바라보는 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라니.

 

허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때론 불행한 일까지 즐거움으로 기억하는 듯합니다. 80~90년대에 제가 살던 파주 금촌 일대는 여름이면 종종 수해를 입었어요. 금촌역부터 금촌 시장까지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수해민은 뗏목을 만들거나 고무보트를 타고 대피하곤 했습니다. 오르막길 골목에서는 그 풍경이 꼭 바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네에 바다가 생겨 신기하다며 넋을 잃고 쳐다보곤 했다. 그때도 홍수가 난 것을 알았지만, 수해민의 고통 같은 것은 떠올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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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8월에도 파주에는 물난리가 있었습니다. 당시 금촌 구사거리의 모습 ⓒ 파주위키

 

나의 유년 그림책 《파주, 금촌》을 덮고 나서 생각합니다. 왜 그때는 수해민의 고통 같은 건 상상도 못 했을까? 아마도 유년 시절에는 모든 세계가 나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렇기에 타인의 고통이나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가는 풍경처럼 무심했던 걸까요? 

어쩌면 타인에 대한 이해는 인간관계를 통한 감정적인 울림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의 세계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친숙하게 느껴야 다른 세계에 대한 기쁨도 슬픔도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타인을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내가 나를 설명하기도 사실 엄청나게 어렵잖아요. 

그렇기에 사람마다 《나의 어린 시절》 그림책 같은 게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설명하기 귀찮거나 쑥스러울 때 《나의 어린 시절》 그림책을 툭 던지면서 "야, 이 안에 내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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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 등단했으며

 2017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빙고선비》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