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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6

SPECIAL

[책장이 있는 영화 이야기] A.I., 현실 혹은 그 상상력의 흐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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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현실 혹은 그 상상력의 흐름에 관하여

 

 

윤성은

영화평론가, 작가

 

Emotion Icon영화학 박사이자 영화평론가인 필자가 영화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장이 있는 영화 이야기>는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애플TV+는 OTT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롤랜드 에머리히, 조너선 놀란 같은 영화계 인사들이 호시탐탐 노려왔으나 번번이 제작에는 실패했던 매력적인 소설 원작의 시리즈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는 1 ,2회 제작비에만 1000억이 소요되었다고 알려진 대작으로, SF 마니아들이라면 제목만으로도 불만 없이 애플TV+에 가입하게 만들었을 법한 시리즈물, 〈파운데이션〉이다. 결과적으로 투자만큼의 성과를 올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방대한 상상의 세계를 구현해 낸 세트와 시각효과만큼은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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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이 원작인 <파운데이션>은 은하 제국의 멸망에 맞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선 망명자들의 여정을 그린다.

드라마 <파운데이션> 공식 포스터 ⓒ IMDB

 

《파운데이션》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 3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아, 영화 〈듄〉(감독 드니 빌뇌브, 2021)의 열성팬들은 그 명단에 프랭크 허버트가 빠졌으며, 《파운데이션》은 다소 생소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연재된 《파운데이션》은 《듄》이 SF문학계의 노벨상을 불리는 휴고상 최우수 장편 부문에 선정되던 1966년, 휴고상 역대 최우수 시리즈상을 받았던 작품으로 이후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문화 콘텐츠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 중 상당 부분이 《파운데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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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에서 만날 수 있는 파운데이션》 10권 (이지헌북스 4,000원)

 

파운데이션》은 심리역사학이라는 가상의 학문을 배경으로 은하제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상화된 〈파운데이션〉은 원작과 상당 부분 다른 요소들을 갖고 있다. 원작에서 주인공 해리 셀던은 인류 전체의 암흑기를 줄이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친 인물이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가 클레온 왕조와 대립하며 은하제국이 몰락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소설에는 관객들을 끌어들일만한 갈등 요소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각색 단계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설정 두 가지는 은하 제국 황제가 자신을 복제하여 그 후임으로 맡기면서 권력을 보존한다는 것과 초자연적인 현상 및 초능력자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홉 종류의 로봇이 등장하는 아시모프의 연작소설집 아이, 로봇과 비교해 보면, 파운데이션》의 등장인물들 또한 A.I.와 유사한 면모를 갖고 있다. 즉, 인간과 같은 모습이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인간을 초월해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적 개념과는 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A.I.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실제로 이런 단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사 초창기부터 감독들은 인간을 닮은 로봇을 스크린에 재연하기 위해 그 시대의 기술을 총동원해 왔다. 메트로폴리스(감독 프리츠 랑, 1927)가 좋은 예일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영화 속 A.I.는 인간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 존재로 발전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충격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블레이드 러너(감독 리들리 스콧, 1982)와 같은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저예산 콘텐츠에서도 A.I.는 단골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목해봐야 할 것은 과거에는 A.I.가 그 외양이 어떻든 단순히 인간의 조종을 받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여겨왔던 감정까지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A.I.를 때로는 인간의 친구나 연인으로, 때로는 적으로 만들면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에서 데이빗은 엄마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동력으로 하는 인물이며,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 her(2014)에서 사만다는 뛰어난 공감 능력과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테오도르의 완벽한 연인이 되어 준다. 물리적 실체조차 없는 A.I.가 여느 연인들처럼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설정은 영화 개봉 당시 꽤나 파격적이었기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A.I. 소재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작품이다. 전반적인 정서가 로맨틱하기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인간과 A.I.는 궁극적으로 일대일의 연인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결말은 쉽게 잊어버리는 듯 하지만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A.I.에게까지 상처를 받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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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는 사랑에 이유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괴리는 테오도르와 사만다를 충돌하게 한다. 다음영화 

 

안타고니스트, 즉 인간과 대립하는 빌런으로서 A.I. 캐릭터도 꽤 매력적인 데가 있다. 여기에는 사실 A.I.의 발전에 대한 인간의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이미 상당 부분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았고, 문화예술영역에서까지 창작가로 군림한 A.I.에게 인간이 느끼는 것은 감탄과 놀라움 너머 콤플렉스와 박탈감,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 중 원칙 1,2 또한 바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된다.(제1원칙) 그리고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만 한다.(제2원칙) 감정의 유무에 관계없이 A.I.는 철저히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기계여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최근 콘텐츠들에서, 인간은 A.I.와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주로 ‘영생’이라는 전인류적 욕망을 기계의 몸을 빌려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된다. 이른바 트랜스휴먼이다. BBC에서 제작한 〈이어즈 앤 이어즈〉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문명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시리즈로, 트랜스휴먼을 꿈꾸는 십 대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미래의 시간은 기계를 몸에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대에서 몸이 기계의 일부가 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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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고 싶어. 사람이 아닌 정보가 되는거야. 그게 트랜스휴먼이지."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 베서니는 첨단기술에 집착하며 육체를 벗어나 디지털이 되고자 한다. IMDB

 

그러고 보면 SF 장르의 핵심 명제도 ‘로봇은 인간이 될 수 있다.’에서 ‘인간은 로봇이 될 수 있다.’로 바뀌고 있다. 참인지 거짓인지는 미래의 여러분이 대답해 보시라. 만약 참이라고 답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로봇이 결코 인간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인간도 결코 로봇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A.I.에 관한 가장 창의적인 상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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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작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그런대로 행복한 영화 호사가

지금은 문화 전반에 관해 얘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도 만들고 있다.

여행 에세이집 《세도시 이야기》(공저), 짧은 소설로 릴리 이야기를 썼다.

 

 

 

 

 

섬네일 : 영화 〈그녀〉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0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