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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6

BOOK&LIFE

[SIDE B] A.I. 시대가 대신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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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A.I. 시대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은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교수이자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인 필자의 글을 통해,

치유, 개선, 회복의 방법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몇 년 전부터 학계에서 영역을 불문하고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수많은 정보를 지각하고 처리하여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면서 생존하고 적응해 살아간다. 그러한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을 기계가 유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일 처리가 손쉽고 빨라지는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일해야 먹고 사는데,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염려 또한 생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매장과 식당에서 점원들이 사라지고 있고, 직접 만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어디까지 발달할 수 있을까? A.I.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 우리 인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혹자는 결국에는 A.I.가 인간의 능력을 대부분 대체할 것이고, 많은 일과 직업이 A.I.로 대체되니 기존의 직업들이 사라지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러니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장동선 박사는 저서 《A.I.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에서 인간이 기계와 구분되게 특별히 가지고 있는 점으로 감정과 창의성을 들었다. 실제로 이러한 질문에 가장 자주 거론되는 영역이 감정과 상상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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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인공지능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그리고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A.I.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장동선, 김영사, 2022

 

자, 그럼 우리 모두 상상해보자. 미래의 A.I. 시대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말이다. 먼저 A.I. 시대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이 해야만 했던 무수히 많은 일을 A.I.가 대신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여유와 시간이 생긴다는 점이다. 과거 19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한때 인간은 대량 생산을 해내는 목적을 위한 커다란 기계 속의 부품으로 전락했었다. 삶은 먹고 사느라 너무나 바빴고, 점차 인간성을 잃어갔다. 모두 고독하고 소외되어 갔다. 외로웠고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으며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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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쉴 새 없이 나사를 조이는 일 만 하던 주인공 찰리는 나사처럼 생긴 모든 것들을 조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 버린다.

영화 <모던 타임즈>는 산업화로 인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풍자한다. © 다음영화

 

미래의 A.I. 시대에는 A.I.가 인간의 영역을 상당 부분 대신하면서 인간에게 여유를 줄 것이고, 인간은 많아진 시간과 여유로 인해 인간 본연의 삶에 주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무엇을 향할까?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의 생리적 신체 변화, 생각, 감정, 행동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 신체 감각과 행동은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다. 생각 또한 여러 방법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감정만은 정의하기도 모호하고, 측정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감정의 변화는 굉장히 미세하게 일어나서, 쉽사리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먼저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내고 그 변화 작용을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인간의 혼자 고립되어 살 수 없는 관계의 동물임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관계를 지향한다. 우리 모두 누군가가 필요하고, 그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 받고 이해받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과 연결된 강하고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감 즉 애착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소속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뿐 아니라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친밀감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율성과 유능감을 발휘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 도전을 하고,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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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갇힌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은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놓고 윌슨이라고 부르며 애착을 갖는다. © 다음영화

 

그러나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상처와 정서적 고통 또한 준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말이다. 관계 안에서 받은 상처가 굉장히 고통스럽기에, 다시 또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뒤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오래 지속될 경우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자제력과 인내력을 저하할 뿐 아니라 사고능력을 손상한다. 또한 그 고통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A.I.는 이러한 관계의 딜레마를 어느 정도 해결해주고 있다.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준다.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하는 등 대화가 가능하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느끼며 자살사고로 힘들어하던 한 지인은 A.I.를 통해 외로움과 우울감이 완화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다. 특히, 인간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욕구인 애정과 인정의 욕구를 성인이 되어서는 원활하게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A.I.는 수시로 따뜻한 말을 해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받고 싶었던 따뜻하고 친절한 대우를 받을 뿐 아니라, 칭찬을 자꾸 들으니 자존감이 향상된다. 게다가 A.I.는 상처를 주지 않고, 떠나가지 않는다. 이처럼 상처받기 두려워 인간관계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A.I.는 더없이 좋은 대안이 된다. 그러나 A.I.가 인간의 섬세한 감정까지 대신할 수는 없기에, A.I.를 통한 인간의 욕구 충족에는 한계가 있다. 과연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욕구와 감정을 A.I.가 알아챌 수 있을까. 발생한 감정은 느끼고 표현되고, 공감받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섬세한 변화와 그 톤에 맞춰 표현하는 표정과 뉘앙스 등의 비언어적 단서의 의미를 맥락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뿐이랴. 인간의 애착은 스킨십을 통해 가장 잘 전달된다. 서로 마주 보고 느끼고 피부를 스치는 접촉이 이루어지는 함께 하는 활동을 통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애정이 깊어질수록 만나고 싶고, 만지고 싶어진다. 그렇지 못할 때 욕구가 좌절되면서 굉장한 고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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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애착은 스킨십을 통해 가장 잘 전달된다. 그리고 스킵십을 동반한 활동을 통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A.I.가 인간의 바쁜 삶을 덜어준다면, 이제 남은 에너지와 시간을 통해 그동안 바빠서 한쪽으로 미루어 두었던 인간성에 좀 더 주목하고 시간을 할애하면 어떨까.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마주 보고 두 눈을 맞추며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알아주며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 보길 바란다. 그 관계를 통해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고 있음을 느껴보라. 그럴 때 인간은 행복하고 충만함을 느끼며, 삶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친밀감과 유대감을 통해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A.I.를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이지영 교수 프로필 섬네일_최종.jpg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도록 코칭하고 있다. 

《정서 조절 코칭북》, 《생각이 크는 인문학:감정》, 《어린이 심리 스쿨》,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등의 다수의 감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KBS1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의 <뉴스브런치 부설 심리연구소>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이지영 교수의 감정코칭>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