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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5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 - 손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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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손때

 

               오은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책장을 넘기자 전래 동요가 들려온다


헌 집과 새집을 맞바꾼다는 게 말이 돼?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이상한 일도 많잖아?

‘두껍아’라는 활자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두꺼비가 대답한다


억울하잖아?

헌 집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두꺼비가 응수한다

새집이 반드시 헌 집보다 좋으리란 법은 없잖아?


책을 덮어버리고 싶다

그러면 저 똑똑한 두꺼비도 사라지겠지


두꺼비가 노래한다

새 책 줄게 헌책 다오


나는 흠칫 놀란다

안 돼!


헌책은 주지 않는다

손때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한번 길든 흔적은 쉬 지워지지 않는다


그 길에 들어선다

내가 든 길, 내가 낸 길


길들고 정들며

오늘도 

내 품에서 내 품으로 전래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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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