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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5

BOOK&LIFE

[SIDE A] 재밌게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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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4주년

재밌게 책 읽기


김동식

소설가

 

 

 

 

책은 재미없다. 유튜브가 재밌고, 웹툰이 재밌고, 게임이 재밌지. 근데 사실은 책은 재밌다. 하지만 유튜브, 웹툰, 게임이 있는데 책을 굳이? 나 역시 과거에는 책 볼 시간에 게임을 했다.


대표적으로 재밌는 게임 하나를 말해보자면 '마인크래프트'가 있다. 레고 장난감의 게임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3차원 세상에서 다양한 블록으로 건설하며 노는 게임이다. 혼자서 뚝딱거리는 것도 재밌지만, 마인크래프트의 진정한 재미는 온라인에 있다. 공용 서버 하나를 만들어서 사람들끼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건데, 투박한 그래픽임에도 몰입감이 엄청나다. 공동체에서 맡은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직업은 유저들끼리 알아서 정한다. 건물을 짓는 건설업자나 농사짓는 농사꾼, 어부, 정육점, 사냥꾼, 유목민 등등 별의별 게 다 나오는데, 뭘 선택하든 초반에는 개고생해야 한다. 맨땅을 개척해서 마을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 다들 몇 시간 동안 죽어라 땅만 판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거기서부터 과몰입은 시작된다. 건설된 마을의 보도블록 하나까지 내 손길이 닿아있는데, 사명감과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일명 '온라인 노가다'를 매일같이 하게 되고, 어느 날 보면 현실의 직장에서보다 마인크래프트에서 더 일을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야근을 안 해도 게임 속에서는 야근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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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에 발매된 <마인크래프트>는 이름처럼 자원을 캐고(mine) 만드는(craft) 게임이다. © 마인크래프트 공식웹사이트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동안 미친 듯이 곡괭이질만 하고,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어업만 죽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밭일만 죽어라 한다. 여기서 재밌는 건, 단순 육체노동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술가 역할인 사람은 동상을 깎거나 그림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카지노를 운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 맡은 역할로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무언가를 즐겨줘야 한다. 그게 이 게임의 궁극적인 콘텐츠다. 서로에 관한 관심과 칭찬, 감탄, 격려, 그런 아기자기한 교류가 굉장히 즐겁다. 그러니까 이 게임이 세계적으로 2억 3천만 장이 팔린 거겠지.


내가 했던 서버에 흥미로운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가 사람들에게 내놓은 콘텐츠는 '책'이었다. 그의 도서관에 전시된 책을 들고 열면, 우린 게임 속에서 책을 볼 수 있었던 거다. 겉모양과 구색만 책인 게 아니다. 내용물도 페이지를 넘기며 볼 수 있는 진짜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만들기 위해서 직접 필사하거나, 창작 시를 쓰거나, 연재하는 등의 노동을 했다. 처음 한두 권밖에 없이 휑하던 도서관이 점점 책으로 가득 차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이라고 해도 될 법한 어떤 감정이 든다.

서버의 주민인 난 당연히 그 도서관을 이용했다. 현실에서 책을 안 읽던 내가, 게임 속에서 책을 읽는 거다. 그럼 나는 게임을 한 것인가, 책을 읽은 것인가? 옆에서 내 모습을 본 누군가는 게임하고 있냐 물을까, 책 읽고 있냐 물을까?

내 생각에는 둘 다다. 게임도 하고 책도 읽은 거다. 지금 와 생각하면 굉장히 인상적인 경험이다. 세상에는 게임은 좋아하지만, 책은 별로인 사람이 있고(많고), 책은 좋아하지만, 게임은 별로인 사람이 있다. 내가 경험했던 방식은 둘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이었던 거다. 독서의 미래를 책임질 힌트가 그곳에 있지 않을까?

물론 내 경험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자발적 참여라는 요소가 있었던 걸 무시할 순 없다. 단지 메타버스에 도서관을 차린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아가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게임인 척하는 도서관이 아니고, 도서관인 척하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이면서 도서관이고, 도서관이면서 게임인 걸 만들어야만 하리라…. 앗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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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안에는 다양한 도서관이 만들어져 있다. 사진은 2020년에 '국경없는 기자회'가 만든 '검열 없는 도서관' © 게임메카


당시 주민들이 도서관 주인에게 많이 한 말 중의 하나가 "《회색인간》 5권 언제 나와요?" 같은 말이다. 그러면 그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하며 열심히 온라인 노가다를 달렸다. 혼자 뚝딱거리고 있는 그를 지켜보는 것도,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것도, 다 즐겁고 재밌었다. 만약 처음부터 내 손에 한 권의 종이책이 주어졌다면 그렇게 기대하며 즐겁게 볼 수 있었을까? 아니었겠지. 이렇게 보면, 우리가 책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게 아니다. 상황, 환경, 마음에 따라 책이 주는 기쁨도 달라진다. 독서를 위해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상황을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 나의 마인크래프트 기억에 따르면 고것 참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가 이번에 4주년을 맞이했다. 보기 드물게 독특한 공간인 그곳이 4년째 우리 곁에 있다는 건 참 축하할 일이다. 무척 재미있는 책 탐험 환경을 제공해주는 서울책보고가 앞으로도 쭉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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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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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소설가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 중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27일 《회색인간》을 시작으로 최근 《인생 박물관》까지, 소설집 14권을 출간하여 활동 중이다.

 

 

 

 

 

섬네일 :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책과 깃펜(Book and Quill) 아이템 ©위키하우(wikiHow) https://www.wikihow.com/Make-a-Book-and-Quill-in-Minecra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