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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3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취향, 문화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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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13

취향, 문화의 뿌리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새해를 맞아 잠시 딴청을 피우며 서점 사이트를 둘러봤다. 신작 추리소설이 나왔고 그간 국내에 소개가 안 된 호러 고전이 번역되어 있었다. 유명한 작가의 판타지 소설이 해외에 소개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인기 있는 장르문학은 이렇듯 수시로 마케팅의 대상이 되어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다양한 책을 읽을 때면 '장르'를 무시할 수 없다. 흔히 생각하는 순문학 외에도 추리, 로맨스, 판타지 등 수많은 장르가 존재하여 독서에 즐거움을 더한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장르든지 그 안에서 다양한 부속 장르가 가지처럼 뻗어나간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동시에 어떤 장르든지 수요가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리고 만약 각기 다른 취향을 기반으로 이 모든 것들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책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영화나 연극을 비롯하여 모든 문화예술 매체에 해당한다.

 

그렇다. 문화의 뿌리는 결국 개개인의 취향이다. 그리고 문화의 싹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즐기려는 욕구의 발현이다. 멋진 탐정이 활약하는 걸 보고픈 사람이 《셜록 홈스》를 읽고 머나먼 우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읽는다. 이것을 비주얼로도 접하고 싶다면 소설 외에 각종 영상매체를 보게 된다. 그리고 발 빠른 창작자들이 그 수요에 반응하여 콘텐츠를 내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창조는 취향의 첫 번째 기능이라 할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 시대까지 쌓인 다채로운 문화를 즐기고 있다. 고전이 된 과거의 소설, 희곡이 그 사례이다. 그리고 미래인의 입장에선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도 그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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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당연하지만 무자비한 독재국가에서는 다채로운 문화가 발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멀리 갈 것 없이 《1984》의 빅 브라더를 상상하면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한다면 자유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엄청난 위험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이라는 문화적 연료를 온전히 이용하려면 먼저 자유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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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감정이 완전히 말살된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조지 오웰의 《1984》 (밍키서점, 3,000원)

 

다행히도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선 대중이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향유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때로는 매니악해서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밝히기 어려울 때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회적 존중과 용기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심하게 부도덕한 분야가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은 합법적으로 자신의 취향, 취미에 몰두할 수 있다. 유행하는 장르든 매니악한 장르든 마찬가지이다.

재미있게도 이 '매니악함'은 취향의 두 번째 기능을 실현한다. 바로 사교의 기능이다. 물론 개인 시간은 소중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특히 취향이 맞는 사람을 대할 때면 더더욱 사회적인 동물이 된다. 취향이 맞는다는 것은 곧 공통 화제가 많다는 뜻이며 어느 때건 가볍고 즐거운 대화를 길게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대화는 심리적 장벽을 누그러뜨리고 때로는 깊은 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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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만약 자신의 취향이 매우 대중적이고 지금 유행 중인 작품을 좋아한다면? 행운이라 봐도 좋다. 사회적으로 주류인 취향은 사교의 기능 역시 용이하게 수행된다. 그런 사람은 무작위로 누군가를 만난다 해도 쉽사리 공통 화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비주류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취향을 공유할 상대를 찾는 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인위적으로 취향 공유를 위한 사교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다. 동아리나 소모임, 축제 등이 그 사례이다. 인연을 원하는 사람에게 곧잘 소모임이 추천되는 걸 보면, 사람은 본질적으로 취향의 결이 맞는 상대에게 마음이 열려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새해에는 시간을 내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창작물을 마음껏 향유하자. 결국 취향은 우리의 생활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연료이고 나아가 인간을 더 사회적 동물답게 만들어주는 기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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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지었다.

 

 

 

섬네일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684#photoId=152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