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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2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기록으로서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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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12

기록으로서의 문학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예로부터 사람의 기억은 다양한 방법으로 후대에 전달되어왔다. 전달의 목적은 학습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물론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들도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하고 자기 경험을 동료에게 나눌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동물은 문자를 이용하지 못하며, 따라서 글을 통한 <기록>의 개념은 온전히 인간만의 소유물이라 할 것이다.

책으로 나온 것들 중 기록이라 하면 개인의 경험을 쓴 에세이 혹은 유용한 학술정보를 기록한 비문학이 연상된다. 그러나 크게 보면 문학 역시 기록이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단지 비문학에 비해 간접적이고 함의적인 방식일 뿐이다. 작가의 경험 혹은 작가가 살아간 시대의 경험은 문학의 형태로 남고 그 내용은 후대에 전해진다. 비록 비문학만큼 객관적, 직접적인 방식은 못 되지만, 다양한 비유와 압축적인 정리로 문학은 기록이 해내야 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록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문학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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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두니스트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전적 문학이다. 수많은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창작의 재료로 활용한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작가 헤르만 헤세는 어릴 적 신학교를 다니다가 신경쇠약에 빠진 경험을 바탕으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창작했다. 영문학을 대표하는 찰스 디킨스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 경험을 살려 《위대한 유산》을 창작했다.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이라지만 결국 그 재료는 만드는 자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다. 위에 예로 든 것들은 실제 경험에 다소 변주를 가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한층 노골적인 것들도 있다. 아름다운 문체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이 그렇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띠지만 실상은 작가의 에세이로 보일 만큼 단조롭고 직접적이다. 그러나 독자는 동성애적 성향을 고백하는 작가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경험과 사회적 분위기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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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푸른숲(황룡서점 3,000원)

 

자전적 문학은 실제로 존재한 경험이 가상에 녹아드는 것이지만 때로는 완전히 가상의 이야기임에도 현실의 경험인 것처럼 기록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문학은 액자식 구성을 따른다. 서술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이 점은 소위 '카더라 통신'과도 비슷한데,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해당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는 것이다.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 가령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이야기도 한 선장이 프랑켄슈타인 본인에게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전개된다. 이런 액자식 구성이 기록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형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기록과 기억의 권위를 입증하는 것이다. 순전히 개인이 지어냈다고 말하기보다는 남에게 들었다고, 혹은 어디선가 읽었다고 말하는 편이 신뢰를 준다. 먼 옛날부터 인간이 해온 '경험의 소통'은 지금도 문학의 한 형식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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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마지막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모든 문학은 작가가 살아간 시대를 담고 있으며 그 시기의 문화적 관습과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다. 현대인이 아무리 시대극을 잘 써낸다 해도 실제 그 시대를 살아간 작가가 써낸 문학만큼 자연스럽지는 못하리라. 이는 앞서 언급한, 창작물이 곧 작가의 기억에 얽매인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장르 소설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19세기 영국 소설 주인공 셜록 홈스는 전보와 신문광고로 수사를 하며, 20세기 초 프랑스 소설 주인공 아르센 뤼팽은 독일과 영토 문제로 협상을 한다. 판타지 소설은 어떨까? 우리는 이미 《반지의 제왕》 속 오크가 저자 톨킨이 바라본 몽골인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 속 4남매가 2차 대전 시기에 시골로 감으로써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문학은 한 시대를 조명한 광의의 기록물인 것이다.  

 

인류는 문자 기록물을 발명했고 그 속에서 더 나아가 문학이라는 매체를 만들었다. 이 점에 감사하며, 필자는 작가의 기억을 반영하는 여러 책들과 연말을 함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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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은 책으로 《고전 리뷰툰》이 있다.

 

 

 

 

섬네일 : 영화<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40971#photoId=55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