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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식물 집사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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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10

식물 집사의 마음으로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집사는 본래 주인 곁에서 집안일을 돌보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본인을 집사라고 부르는 게 시작이었다. 도도한 고양이가 주인이고 그걸 키우는 사람은 집사라는 우스갯소리이다. 전통적 주종관계가 뒤바뀐 이 기묘한 단어 사용은 곧 널리 퍼졌다. 요 몇 년 사이엔 집사라는 호칭이 꼭 고양이 집사에 한정되지만은 않게 되었다.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며 너도나도 ‘집사’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집사들이 자신들의 '주인' 돌보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개나 고양이 집사는 물론, 파충류 집사, 양서류 집사, 더 나아가 동물을 벗어난 '식물 집사'까지 두루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은 단연 식물일 것이다. 동물과 달리 움직이지도 않고 적절히 물만 주면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 역시 제대로 키우려면 여타 동물 못지않은 정성이 들어간다. 엄연히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사람들이 집에 화분을 가득 두고 하나하나 돌보는 모습을 보자면 집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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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두니스트

 

 

식물이라 하면 수확을 위한 농산물을 주로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다 할 실용성을 지니지 않은 꽃이나 난초도 많은 사람이 키우고 있다. 농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식물이 일종의 '반려'로서 정성으로 재배되었다. 서민들도 텃밭을 가꾸었고, 여유가 있는 상류층이라면 더욱 기르기 까다로운 식물을 다양하게 길렀다. 이러한 행태는 자연스레 인류의 문화로 녹아들었다.

문학에서도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엿볼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서는 유유자적 사는 주인공이 집에 수반을 두고 관리한다. 때로는 꽃을 가져와 실내에 향기를 퍼뜨리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나 식물을 보기 좋게 관리하는 것은 고상한 취미로 여겨졌는데, 생활에 여유가 있다면 정원과 화단을 아름답게 가꿔 자랑으로 삼기도 했다. 체호프의 음울한 단편 <검은 수사>에서 이렇듯 환상적인 정원을 찾을 수 있다. 아마 작정하고 사례를 찾는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식물 집사가 책장에서 튀어나오리라.

 

 

하지만 구태여 모든 인물을 가져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식물 집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속 등장인물이지만 고전문학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이미 알고 있을 터이다. 다름 아닌,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행성 B612에서 장미꽃을 한 송이 키운다. 어딘가에서 우연히 날아와 싹튼 장미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의 반려생물로 치환하면 집 앞에 버려진 강아지나 베란다 화분에 날아든 홀씨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바오밥나무와 작은 화산뿐인 황량한 행성에서 왕자가 장미에 쏟는 정성은 누구라도 감탄할 만하다. 그러나 왕자의 애정은 다소 서툴고 장미는 신경질적이다. 어린왕자는 잠시 소행성을 떠나 장미와 이별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식물 집사가 식물과 절교하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연히 키운 장미꽃을 매개로 애정과 관계에 대해 통찰하는 기나긴 이야기이다. 왕자는 이후 수많은 별을 여행한다. 그리고 자신이 키운 장미의 심리와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맨 처음 지구에 왔을 때처럼 홀연히 자신의 장미에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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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두니스트


 

비현실적인 서사지만 우리는 자라나며 이 내용의 의미를 알게 된다. 《어린 왕자》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누군가를 대가 없이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으로 생겨나는 연대를 순수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수많은 식물 집사들이 특별한 수확 없이 화초를 기르며 지니는 마음일 것이다. 비록 이 세상은 차가운 이해관계로 가득하지만, 집사로서의 마음을 기억하며 때로는 단순한 애정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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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은 책으로 《고전 리뷰툰》이 있다.

 

 

 

 

 

 

 

섬네일 : 영화 <어린왕자>(1974) 중 한 장면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41056#photoId=565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