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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9

INSIDE

[서울책보고 직원이 요즘 읽는 책]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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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책보고 직원이 요즘 읽는 책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

김지원, 지콜론북, 2022

 

운영관리팀 P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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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기획전시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잠들기 전에 읽으려고 고른 책을 그때그때 침대 머리맡에 쟁여두고 있지만, 현실은 펴보지도 못한 책들이 줄줄이 쌓여 어느새 책탑을 이루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기획홍보팀 P대리님이 이 책을 건네주고 가셨다. 감사하게도 ‘너 보여주려고 산 책이야.’라는 메시지도 함께 왔다. 제목만 보아도 왜 나에게 보여주려고 이 책을 사셨는지 알 것 같았다. 책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

Stuff We Love

일상을 환기하고 감각을 깨우는 사물 산책


평소 펜, 연필, 자, 메모지, 공책, 칼, 가위 등 문구용품은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귀엽고 쓸모없는 문구류나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옛 물건을 보면 마음속으로 ‘이건 꼭 사야해’, ‘이러려고 돈 벌지’하고 외치며 지갑을 열고 만다. 이런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우리가 지금 함께 준비하고 있는 전시의 주제와도 일치해서 빌려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목차를 쭉 훑다가 눈에 띄는 소제목이 있었다. 

 

<사랑하면 보이는 것> 공예장생호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비둘기들의 날갯짓 사이로 해를 등지고 매일 아침 인사동 문화의 거리를 지난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거리가 예전에는 꽤나 유명한 서점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여느 헌책방 거리처럼 즐비하게 헌책을 쌓아놓은 풍경을 상상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수령이 몇 년이나 되었는지, 커다란 가로수들 뒤로 촘촘하게 늘어선 다양한 상점들의 밀도 있는 행렬이 그 사실을 쉽게 망각 속에 빠뜨리고 만다.


‘살아있는 시간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와 밀도의 문제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 제격인 이 거리의 특징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 세기의 취향들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그 취향의 사물들의 역사까지 생각한다면 시간은 무한대로 펼쳐진다. 그러니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조금 천천히 옮기는 것이 좋다. 오늘 새로운 것은 내일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한 작은 단서가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인사동 거리 한복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서점 통문관이 있다. 90년 가까이 3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이 고서점은 이 거리가 서점가였다는 역사적 증거다. …그 주변에는 1970년대에 이 거리에서 호황을 누렸던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있다. 드문드문 골동품 가게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거리를 지킨다.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곳들이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신기루 같은 오래된 가게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보물로 가득한 이 곳. (후략)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유홍준 선생님께서 유한준의 말을 인용하시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마음에 드는 공예품이 생기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더 알고 싶어지고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 더 소중하고 좋아질 수밖에 없죠. 정성을 쏟아 만드는 물건인데 그냥 물건으로 보이지 않아요. 좋아하는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고,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요.” 


_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 중, 91~94쪽.


 

글을 읽으며, 인사동에 자리한 작고 소박한 취향 공간 ‘공예장생호’와 ‘서울책보고’가 서로 닮아 있는 것 같아 반갑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책보고 서가에서 보물을 발견하려면 마음과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오시는 것이 좋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권유일 수도 있겠지만, 이 많은 헌책 속에서 나만의 기쁨을 발견하려면 그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서울책보고에도 긴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비로소 이곳에 자리 잡게 된 헌책들이 모여 있다.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책부터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비교적 요즘 나온 책까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책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어디에서 구매한 책인지, 어디까지 읽고 헌책방에 팔려나온 건지, 누구에게 선물 받은 책인지, 그 구절을 읽고 당시의 독자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등의 흥미로운 정보를 알려주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책갈피, 껌종이, 낙엽, 네잎클로버는 물론이고 졸업장, 이력서, 사진, 편지 등 좀 더 개인적인 물건들까지 다종다양하게 책 사이에 끼워져 있다. 


서가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런 물건들을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다가 P대리님께 전달해드리면 서울책보고 웹진의 <세렌디피티> 코너에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깔나는 스토리텔링이 더해져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예상치 못한 발견의 기쁨을 나누는 데 소소하게 이바지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세렌디피티>에 소개되었던 물건들을 곧 서울책보고 기획전시 <헌책방의 사물展(전)>에서 함께 만나볼 수 있으니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급공손♥)


공예장생호의 대표가 정성을 다해 만드는 공예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보며 기시감이 들었다. 아마 서울책보고가 북큐레이션 문고를 통해 좋은 책과 작가들을 독자들과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큐레이션 문고를 한 권 한 권 읽고 반응해주시는 독자분들과 책을 통해 소통하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것도 서울책보고에서 일하며 누릴 수 있는 놀랍고 소중한 경험 중 하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라는 말처럼, 서울책보고에 오셔서 서가에 꽂힌 헌책들도 사랑으로 찬찬히 살펴보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책과 사람을 연결 짓는 이 공간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