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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9

BOOK&LIFE

[SIDE B] 우리는 왜 무서운 작품을 볼까? -고딕 장르와 공포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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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우리는 왜 무서운 작품을 볼까?

 - 고딕 장르와 공포의 심리학 - 

 

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Emotion Icon 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 >은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학문 세계의 전문적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브리스톨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 데이비드 펀터(David Punter)는 공포의 문학(The Literature of Terror)》(1996)에서 고딕 소설을 논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문학에서의 고딕 전통은 주로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의 초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여 그 시대의 양식을 재현하고, 고풍스러운 주제와 유령이 깃든 성, 초자연적인 요소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가리킨다.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1764)이 고딕 소설의 효시로 꼽힌다.


현대에도 흡혈귀, 늑대인간, 유령 등 초자연적 요소가 중심 소재로 쓰이는 공포물은 ‘고딕’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엄밀하게 정의되는 장르라고 하기는 어렵다. 현대의 많은 고딕 공포물은 고딕의 뿌리인 18세기보다는 19세기 작품들로부터 더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 시대의 작품들에선 초자연적 요소뿐만 아니라 낭만적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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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브램 스토커에 의해 1897년에 처음 등장한 드라큘라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장르에 등장한다. 

사진은 넷플릭스의 <드라큘라>(2020) © 넷플릭스

 

 

고딕 픽션에는 여러 가지 테마와 스타일이 녹아 있어 명확히 이러한 것이 ‘고딕’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고딕 픽션에 빠지지 않는 정서적 요소는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함, 바로 공포이다. 초자연적 현상이나 비현실적인 존재가 공포를 유발하는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것이 고딕 장르의 특징이다.


공포는 심리학에서 가장 깊이 연구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뇌영상 기법의 발달로 과학자들은 공포라는 감정이 작동하는 뇌 부위를 찾아내기도 했다. 뇌의 안쪽 해마 끝에 위치한 아몬드 모양의 신경다발인 편도체(amygdala)가 바로 그것이다. 편도체는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데, 특히 공포, 불안 반응 및 그와 관련한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저스틴 파인스타인(Justin Feinstein)은 편도체가 손상된 S.M.이라는 환자를 연구했는데, S.M.은 뱀이나 거미 같은 무서운 동물과 마주쳐도 겁을 내지 않고 만지려 했으며, 귀신의 집에서도 전혀 놀라지 않아 거꾸로 귀신 역할을 한 사람이 놀랐고, 공포 영화를 보여줘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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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적인 사건 이후 비슷한 상황이 되면 사건 당시의 공포감이 떠오른다. 이것이 ‘공포기억’이다.

슈퍼 히어로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부모와 관련된 일에는 매우 약한 모습이 노출된다. © 다음영화 



이렇게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생존에는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공포를 느낌으로써 위험한 대상을 감지하고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라는 감정이 인간과 동물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이유 역시 위험이 도사리는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포 자체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부정적 정서이다. 즉, 유쾌하기보단 불쾌하며 피해야 할 감정이다. 자연환경에 실재하는 현실적인 공포가 아닌 인위적 공포 역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유명한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1973)가 흥행한 후 스트레스를 호소한 관람객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 중 일부는 불안과 수면장애까지 경험했다고 하는데 장기적으로 심각한 결과가 있었다는 보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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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에게 엑소시즘이란 것을 알린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  © 다음영화

 


사람들은 왜 공포를 유발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일부러 감상할까? 고딕 장르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일부러 부정적 감정과 마주하려는 걸까? 심리학자 돌프 질만(Dolf Zillmann)은 흥분 전이 이론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공포물을 보면 먼저 긴장감을 느끼며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하지만 결국 공포의 대상이 사라지는 결말로 전개되면서 긴장감이 해소되고 부정적 정서가 희열로 바뀐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공포물에서 꼭 공포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작품도 많기 때문에 이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만족감 이론으로 설명한다. 파괴, 흥분, 예측 불가능성 자체를 즐기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각성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자극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그것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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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을 즐기는 사람의 마음을 한 가지로 설명하려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예술작품과 창작물은 그것을 감상하고 즐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장르와 작품의 의미는 각자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답일 것이며, 스스로의 취향을 탐구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즐길 거리도 다양해지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면의 심리적 기제가 무엇이든 SF의 흥행에 이어 고딕 장르도 주목을 받으며 대중문화가 다양해지는 것은 매우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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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문 세계의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