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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8

INSIDE

[오늘의 헌책] PC통신에 연재된 1990년대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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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헌책 : SF 한 번 읽어볼까?

저 서울책보고 서가 한구석에 오랫동안 숨어있었으나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헌책의 쓸모와 오늘의 트렌드를 연결하는 새로운 코너

 

 *

PC통신에 연재된 1990년대 SF 

《파란 달 아래》,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1992년 

 

 

이번 SF 특집에 가져온 ‘오늘의 헌책’은 복거일의 《파란 달 아래》(문학과지성사, 199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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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네. 사회평론가로 활동하시면서 우리 사회에 여러 화두를 던지셨던 그분 맞습니다. 그런데 사회평론가로 알려지기 이전에 복거일 작가는 1987년 《비명을 찾아서》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이기도 해요.(《비명을 찾아서》 또한 SF소설로 서울책보고에 때때로 입고되곤 했던 헌책입니다.Emotion Icon) 그의 저자 소개란에 보면 “‘대체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는 만든 작가”라고 적혀 있는데요. 지금은 소설과 드라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대체 역사 장르를 이분이 만들었다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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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 복거일 작가는 1992년 5월에서 9월까지 PC통신 하이텔(HITEL)에 오늘의 헌책 《파란 달 아래》를 연재하죠.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직업 작가가 PC 통신에 소설을 연재한 것은 복거일 작가가 처음이었다는 것. 당시에는 이것이 새로운 문학 매체의 탄생을 뜻하는 거였다고 작가가 후기에 쓰고 있네요. 한 번 ‘작가 후기’부터 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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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92년 5월에서 9월까지 ‘한국PC통신주식회사’의 전산통신망 ‘HITEL’에 연재되었다. 전산통신망에 직업 작가가 소설을 연재한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새로운 문학 매체가 나왔음을 뜻했고 적잖은 관심이 그것에 쏠렸다.

그러나 전산 통신망에 소설을 맨 처음 발표한 것은 전산통신망을 운영하는 회사의 격려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비직업 작가들이다. 내 생각엔 그런 자발적 연재가 여러모로 상징적이고 주목할 만하다.

어쨌든, 전산통신망의 특성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작가가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데 나와 회사가 합의했고 ‘작가와의 대화’와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자료집’이란 난들이 마련됐다. 소설의 연재가 끝난 뒤, 그것을 책으로 내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나는 그런 난들을 통해 독자들과 했던 얘기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마침내 한번 씌어진 것을 버리기 싫어하는 작가의 욕심이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내 천성을 이겼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쓸모있을 지식들을 제공하고 전산통신망으로 연결된 작가와 독자들 사이의 관계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구실을 내세우고서, 후기의 한 부분으로 싣기로 했다.


1992년 11월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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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작가가 언급했듯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PC통신’이라는 플랫폼에 연재된 흔적을 품고 있어요. 소설이 연재되던 ‘게시판’과 별개로 따로 운영되던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자료집’난과 ‘작가와의 대화’난의 내용이 소설책 말미에 부록처럼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PC통신’에 연재 후 바로 출판물이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이 품은 또 하나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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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PC통신에 연재했던 이 소설이 SF 장르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이 소설의 무대는 달이다. 그리고 때는 2030년대다. 그런 세상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필연적으로 과학소설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렇게 멀리 떨어진 시공을 제대로 그리려면, 과학적・기술적 사항들에 대한 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런 세상을 그린 작품의 전언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흔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의해 다듬어지는 인류 사회의 모습이다.

 

-작가의 ‘연재를 시작하며’에서 

 

아마도 1990년대 초반에, 40년이 지난 2030년대(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Emotion Icon)의 남북통일 상황을 묘사하고자 할 때, 그러니까 낯선 세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SF’라는 장르만큼 어울리는 장르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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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복도훈에 따르면, “한국에서 SF 장르를 선구적으로 개척한” 작가는 복거일과 듀나입니다. 그런 복거일 작가의 《파란 달 아래》는 SF소설에서는 최초로 분단과 통일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작품이라는 점이 돋보이는데요. 약 한 달 전에 제2회 성균 국제 문화연구 연례 포럼 포럼에서 세션2 <‘동아시아’라는 SF의 장소>에서 마침 ‘SF로 보는 분단 극복의 욕망: 복거일의 《파란 달 아래》를 중심으로’라는 이예찬 님의 발표가 유튜브에 공유되어 있더라고요.

 

“1992년은 한반도 혹은 조선 반도에서 무력을 앞세운 대결보다 활발한 대화가 이어지는 그런 데탕트 국면의 상황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1991년 9월에 UN동시 가입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해 12월에 이제 ‘남북기본합의서’로 알려져 있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연재되었던 복거일의 장편소설 《파란 달 아래》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특히 달에서의 생활과 달에서 바라본 지구를 중심으로 한 미래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SF의 낯선 상상력’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분단 문학을 과학 소설의 틀로 나뉘어 녹여내 이목을 끌어냈다는 평가처럼 해당 작품이 펼치는 서사의 큰 줄기 자체가 독자들에게 생소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월면 기지의 현실이란 단순히 과학적 상상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분단 현실을 통한 사회학적 상상력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입니다.” _이예찬.


출처 클릭


 

소설 속 월면 기지가 “단순히 과학적 상상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분단 현실을 통한 사회학적 상상력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이라는 연구자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SF라는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마도 SF는 당대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을 담아 혹은 미래를 전망하며 조심스레 꿈꿔보는 상상력을 실어나르는 장르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1991년과 1992년의 시대 배경 속에 통일 문제를 담은 SF가 탄생한 거고요. 1992년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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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 PC통신 천리안 광고 사진 © 파이낸셜투데이 https://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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