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3
SPECIAL[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 - 두 번째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
두 번째 이야기
최종규(숲노래)
작가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 >은
헌책을 좋아하는 이가 들려주는 헌책 서평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사기사와 메구무 글, 최원호 옮김, 자유포럼, 1998.1.20.
▶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일본판(왼쪽)과 한국판(오른쪽) 표지(사진 : 최종규)
요즘이라면 겉에 “일본 인기 여류작가의 서울살이 180일” 같은 이름을 섣불리 안 붙일 테지만,
1998년에는 이런 이름을 박는 곳이 흔했고, 저는 그무렵 이런 한 줄이 못마땅해서 밀쳤습니다.
이러던 2004년 4월 11일,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사람·조선사람으로 가르고, 순이돌이로 가르는 굴레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글을 짤막하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갑자기 멍해서 예전에 밀쳐둔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장만하려고 했더니 진작 판이 끊어졌습니다.
2004년 12월에 헌책집에서 겨우 한 벌 찾아내어 읽었습니다.
‘¼ 한겨레 핏줄’이 흐르는 줄 문득 알아차리고서 한말글을 익히려고 서울 연세어학당을 여섯 달 동안 다니는 동안
두 나라가 얼마나 차갑고 메마른가를 새록새록 느꼈다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일본에서 나온 “ケナリも花 サクラも花”는 옅파란 바탕에 두 가지 꽃이 나란하고 군말을 안 넣습니다.
글님은 그저 ‘글님’일 뿐이고, 사는곳은 사는곳일 뿐이거든요.
모든 꽃은 참말로 꽃이요, 모든 풀은 그저 풀이며, 모든 나무는 늘 나무입니다.
그러나 차갑거나 메마른 두 나라는 ‘안 배우려는’ 사람들입니다.
‘배우려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따뜻하고 곱고 포근해요.
부디 하늘빛으로 쉬시기를.
“아, 알았다. 메구무 씨의 이야기가 어쩐지 생소하지 않더니,
우리가 일본에 있으면 일본인과 다르고, 한국에 있으면 한국인과 다르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아닌가요?”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랬구나, 내가 느끼고 있는 빙벽은 그것과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64쪽)
《차개정잡문》, 로신 글, 연변인민출판사, 1976.12.
▶ 《차개정잡문》, 로신 글, 연변인민출판사,1976 (사진 : 최종규)
2005년에 중국 연길시에 갔을 적에 길거리책집에서 《차개정잡문》을 만났어요.
중국한겨레(조선족)는 길바닥 책장사를 안 한다더군요.
남녘으로 건너가면 목돈을 벌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라지요.
한글책을 파는 중국사람은 ‘모처럼 한글책이 팔려’ 이 책 저 책 보여주면서 한몫에 싸게 가져가라고 손짓했습니다.
남녘에서 나도는 흔한 소설책을 빼고 몽땅 장만하니 두 손으로 가득했습니다.
며칠을 연길시 골목골목 거닐었는데 길장사도 책집도 모두 중국사람입니다.
우리는 돈만 잘 벌면 될까요?
잔뜩 번 돈은 어디에서 어떻게 쓸 셈일까요?
손때가 짙게 밴 《차개정잡문》 뒤쪽에는 ‘연길시 신화서점 留念유념’ 같은 글씨가 찍혔습니다.
중국말 ‘유념’은 우리로 치면 ‘드림책’에 찍는 글씨이지 싶습니다.
로신(노신·루쉰) 님은 앞길을 읽으며 오늘과 어제를 새롭게 새기는 글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온나라를 바보로 만들려면 “책집을 밟으면 된다”고 읊은 말은 참으로 옳아 슬픕니다.
“서점을 억압하는것은 그야말로 제일 좋은 전략이다 …
일본은 워낙 계급투쟁을 말하지 못하게 하지만 세계상에 계급투쟁이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상에 계급투쟁이란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모두 맑스가 날조해낸것이므로
그를 금지하는것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함이라는것이다. (186, 187∼188쪽)”
최종규(숲노래)
작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
사전 쓰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찾아 헌책집-마을책집을 1992년부터 다닌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쉬운 말이 평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곁책》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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