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서울책보고
《농무》와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
인스타그램 업로드_2022년 9월 16일
서울책보고에만 있는 희귀하고 놀랍고 의미 있는 혹은 재미있는 책을 소개하는
'오직서울책보고', 벌써 9월에 두 번째 인사드립니다.
이번 달 북큐레이션 주제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시'입니다.
전시와 북큐레이션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본거죠.
헌책 기획 전시를 따라 랜덤박스와 생년문고에 이어
'오직서울책보고' 까지 9월은 온통 '시 잔치'입니다.
그렇게 오늘 '오직서울책보고'에 가져온 책은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두 권의 시집입니다.
바로 창비시선 1권인 신경림 시인의 《농무》
그리고 문학과 지성 시인선 의 1권인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입니다.
'창비시선'과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시집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시리즈인데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시집 시리즈의 1권이라면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겠죠?
2000년의 기사로 그 의미를 한 번 들어볼까요?
*
창비시선은 사회의식과 사회적 상상력을 문학의 당당한 한 주류로 올려놨다는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농민의 삶과 농촌 현실을 핍진하게 표현한 제1권 <농무>는
시의 건강한 사회성 담보라는 창비시선의 운명과 역할을 예견케 한 좌표였다.
…저항정신이라는 창비시선의 '이념'은 조태일 <국토>, 양성우 <북치는 앉은뱅이>,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문병란 <땅의 연가> 등 6종이 판매금지 됐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창비시선은 또 국내 첫 신작시집 시리즈이자 시집의 대중화‧상업화를 성공시킨 한 주역이다.
창비시선은 74년 민음사가 시작한 '오늘의 시인총서'와 78년 문학과지성사가 시작한 '문지시인선'과 더불어
시인이 인세를 받는 시집을 등장시켰고 80년대 '시의 시대'를 가능케 했다.
_경향신문, 2000.9.27. 기사.
80년대 '시의 시대'를 가능케 했다는 이 시집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창비시선의 운명과 역할을 예견케 한 좌표가 담긴 시 '농무' 일부 같이 감상해보실까요.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1971. 창작과비평)
1970년대의 시대의식을 담은 시를 보고 있자니,
2020년대인 지금은 같은 창비시선이어도
어떤 한 가지 색깔에 매이지 않은 다채로운 정신을 담은 시집들이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1권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느낄 수도 있고요.
'책뒤에' 적힌 신경림 시인의 말입니다.
*
"시집 《농무》를 내놓고 나서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긴급조치가 내렸다.
많은 친구들이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거나 또는 수난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서 《농무》가 분에 넘치는 제1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기쁘고 자랑스러웠지만,
고생하는 친구들을 생각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었다. (후략)"
'긴급조치'.
1970년대,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위임했던 긴급권입니다.
신경림 시인이 제1회 만해문학상을 받은 1974년에만 모두 9차례 공포되었다고 하니,
이 시가 읽히던 시대가 얼마나 엄혹했는지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시집 전반에 1970년대의 정치사회문화가 흐르고 있는 《농무》.
서울책보고에 오시면, 이렇게 어떤 시리즈의 시작이 되는 그 소중한 역사의 순간을 만나볼 수 있답니다.
앗. 아직 문지 시인선 1권인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이야기를 못했네요!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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