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마지막 생년문고입니다. 요즘 출근하다 보면, 하늘색이 뭉클하게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요. 이렇게 좋은 계절, 어떤 책 읽고 계세요? 오래되어 깊은 맛을 품은 책들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여기 생년문고로 묶인 책들을 통해서요. 

1993년 #티타임의_모녀 (3권/12,000원)

오늘은 제14대 대통령이 취임한 해, #금융실명제 가 시행된 해, #대전엑스포 (#꿈돌이 기억하시나요?)가 개막한 해, #국립중앙박물관 이 개관한 해, 일명 #백제금동대향로 라고 알고 있는 #금동용봉봉래산향로 가 발굴된 해, 여러모로 사회에 큰 변화가 일고, 문화예술적으로 다양한 계기가 있었던 해, #1993년 입니다.

1990년대 초반은 전 세계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하고, 1980년대의 가열했던 민주화 운동도 점차 다른 양상을 띄게 됩니다. 이런 시대 상황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두루 눈에 띄는데요. 오늘 표제로 삼은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공장에 위장 취업한 운동권 학생과 결혼한 한 여공의 내밀한 심리를 잘 묘사한 P선생님의 단편입니다.

90년대 초반, 달라지는 사회와 삶의 한 풍경을 영화의 한 장면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 역시 소설가 P선생님의 솜씨란. 하지만 그 솜씨는 단지 시대를 묘파하는 데서 끝나지 않죠. 여공 출신 아내의 내면을 작가 특유의 말맛 사는 문장으로 그려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는 여러모로 신랄한 장면이 나와요. “내가 꿈꾸는 세상은 사람들이 서로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말하며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에 따라서 사람대접이 달라지는 세상은 옳지 못한 세상”이라고 말하던 남편이었건만, 아이가 사고를 당하자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온 운동권 출신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무식하게스리, 그가 그 한마디를 씹어 뱉고는 아이를 안고 집을 뛰쳐나가 길고 긴 계단을 곤두박질쳐 내렸다.

거기에 더해, 남편 집안에서 경영하는 병원 구성원들과 문병객들은 여공 출신 아내를 철저히 무시합니다.

그들은 나를 없는 것처럼 대했다. 그들 사이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병실을 지키고 있을 때 문병객이 나타날 적도 있었다. 그럴 때 그들은 나를 뻔히 바라다보면서도 어머, 아무도 없네, 하면서 돌아서곤 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천대였다.

P선생님이 포착한 90년대 초반의 풍경이 꽤 살벌합니다. 오늘의 시대를 예견한 듯한 이 작품이 실린 1993년 대표 단편 모음집 한 권, #김별아 작가의 단편과 #왜_우리는_전향을_거부하는가 라는 제목의 #비전향장기수의 헌법소원 이유서가 담긴 문예지 한 권, 대표적 #노동자시인 Y의 1993년 초판 시집 한 권까지 가볍지만 무거운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1993년생인 당신, 아니면 1993년생 지인을 둔 당신,

혹은 1993년의 사회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당신,

한 번 주문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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