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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8

BOOK&LIFE

[SIDE B] ‘살아있는 책’의 축제, 아트북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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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국제 아트 북 페어, 출처 : 공식 홈페이지(클릭 후 이동) 


‘살아있는 책’의 축제, 아트북 페어


정지현

북디자이너, studio <즐거운생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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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최 10주년을 맞은 ‘2019 도쿄 아트 북 페어’는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아트북 페어’가 초면인 당신에게


국내외의 ‘아트북 페어’ 역사는 십여 년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매년 수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행사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하지만 ‘아트북’이라는 개념이 친숙하지 않아서인지 업계 행사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고, 무엇을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지 어려워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아티스트들은 작품 발표를 위해 갤러리를 통해 전시를 하고 도록을 발간해 왔다. 하지만 SNS의 쓰임이 발달하면서 전시와 판매의 장도 온라인으로 확대되었다. SNS로 아티스트와의 소통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창작자와 팬을 연결하는 오프라인 행사인 아트북 페어도 동반 성장하게 되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도쿄 아트북 페어’를 통해 해외에서 열리는 아트북 페어의 분위기는 어떤지 살짝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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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아트북 페어’ 사무국은 행사 개최 10주년을 기념해 ‘긴자에디션'을 기획했다. 

본 행사를 축소한 버전의 미니이벤트로, 긴자의 ‘SONY빌딩’ 전층에서 진행되었다. 

관람객의 앵콜 요청이 많아 행사기간이 연장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아트북 페어는 전시와 마켓이 결합된 형태의 행사로, 여기서는 참가자인 아티스트가 각자 부스를 준비해 관람객과 직접 만난다. 이 점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일반 전시와 가장 다르다. 


전시 품목이 일반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쇄물이나 MD(merchandise)가 아닌 점, 또한 소량 제작된 한정판이 많다는 점도 특색 있는 전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행사를 찾는 주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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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그림은 본인을 그린 것일까?’ 그림과 똑 닮은 작가의 모습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아트북 페어는 출판이나 디자인 업계인들에게는 협업할 작가를 섭외할 수 있는 미팅 현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수백 팀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다. 현장에서 작품의 실물을 보며 완성도를 체크할 수 있기에 업계인들은 여기서 적극적으로 작가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아트북 페어를 처음 찾은 사람은 다소 정신없는 분위기에 당황할 수 있다. 고요한 전시장 분위기는커녕, 끝없이 밀려드는 인파가 놀라울 것이다. 자칫 행렬에 떠내려가 앞사람 뒤통수만 보다가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단 하나의 참가팀도 놓치지 않고 보겠다!!는 격렬한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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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작품을 놀이처럼 소개하는 다양한 방식이 즐겁다. 단돈 100엔(약 천원)에 모시는 캡슐 포엠 머신. 우리나라의 ‘뽑기' 오락기와 흡사하다.

(오른쪽) 내게 온 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의 일역본.


이런 분위기에 슬슬 익숙해지면, 주파수가 통하는 부스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인파의 무게를 등짝으로 막아내며 잠시 작품 감상의 시간을 가져 보자. 부스를 지키는 아티스트와 눈이 마주치거든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질문을 해도 좋다.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인지 설명을 들어보자. 초면에 이런 대화가 쑥스럽다면, 사방에서 열리는 팬미팅의 현장을 슬쩍 들여다봐도 좋다. 고백이 이렇게 간단할 일인가. ‘작가님 너무 좋아요!’ ‘진짜 오랜 팬이에요!’ 사랑 고백이 난무하는 현장의 에너지가 얼마나 뜨거운지, 그 장면들을 즐겨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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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가운데)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판매하는 부스이다.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좋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른쪽) 아트북을 구매하면 그림을 그려주는 이벤트를 여는 작가들도 있다.

 

참가 부스 중에는 작품 구매자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이벤트를 하거나, 관람객 참여로 작품을 제작하는 곳도 있다. ‘세상에, 관람객 참여라니! 부담스러워!’ 싶은 사람이라면, 적극적인 관람객이 몸소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슬쩍 구경만 해도 좋다.

 

 

 

감상을 위한 작품에서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아트북 페어가 성장하고 관람객의 규모가 커지자, 선보이는 작품의 형태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인 제품군인 포스터나 책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휴대폰 케이스, 파우치, 에코백, 손수건, 티셔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작품을 접목시켜 판매한다. 감상을 위한 작품의 형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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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언뜻 담배처럼 보이지만, 미니북이 들어있는 패키지디자인

(오른쪽) ‘저것은 왜 저기에…?’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전시되는 모든 것이 작품이자 상품이다.

 

대형 브랜드의 캐릭터를 향유하는 소비층이 견고하지만, 흔하지 않은 스타일의 작품을 즐기는 소비층도 존재한다. 그런 소비자들은 누구나 알고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장의 제품보다, 희소성 있는 작품과 아티스트를 디깅(digging, 소비자가 선호하는 특정 품목이나 영역에 파고드는 행위)하며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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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컨셉을 맞춘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해 함께 판매한다.

 

판매 품목이 다양해지면서 몇 해 전부터 종종 발견되는 희귀 아이템 중에는 음악이나 영상 콘텐츠를 접목한 것들도 있다. 지금은 쉽게 보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 LP, CD 등에 아트웍을 입혀 제품화한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도 준비되어 있다. 레트로에 열광하는 젊은 층의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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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재치가 넘치는 판매 부스. 유쾌한 표정의 아티스트가 직접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렇게 소비 욕구를 한껏 자극하는 제품들 외에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또 있다. 아티스트들이 직접 꾸민 참가 부스이다. 작은 테이블과 벽 정도로만 구성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부스 디자인도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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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부스를 하나의 상점처럼 꾸며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른쪽) 932m 높이의 롯코산에서 열리는 사진페스티벌을 홍보하는 부스. 산의 형태를 심플하게 표현했다.

 

행사의 메인인 아티스트 부스를 마음껏 즐겼다면, 이제 주최 측에서 마련한 다른 이벤트도 둘러보자. 아트북 페어는 국제적인 성격의 행사이므로 초청국이 있다. 초청국 전시에서는 초청국에서 준비해 온 콘텐츠가 전시되지만, 판매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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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의 초청국은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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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는 크게 자국 참가팀과 국외 참가팀으로 나뉘고, 초청국 전시가 별도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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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혼마 다카시(ホンマタカシ, Takashi Homma)의 “Every Building on the Ginza Street” 프로젝트 사진 워크숍에 직접 참여해 보았다. 


긴자 거리의 지정받은 구역으로 가서 각자의 촬영 도구로 거리를 촬영한다. 이 참여 작업 역시, 오랫동안 긴자 거리의 변화를 기록해 온 혼마 다카시의 프로젝트의 일부를 구성한다. 참가자들이 각자의 촬영 사진을 업로드하면, 이후 완성된 사진집을 보내주는 것으로 워크숍은 종료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받는 이벤트 중에는 이렇게 아티스트와 함께 하는 워크숍이 꽤 있다. 동화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워크숍, 사진 작가가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여해 사진집을 출간할 수도 있다. 워크숍 참가가 어렵다면 저자 사인회, 작가 초청 대담, 각종 공연에 참석할 수도 있다. 


이런 기획을 통해 각 나라의 아트북 페어가 지향하는 행사의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아트북’보다 ‘아트’라는 상위 개념으로 페어의 활동 반경을 넓히려는 경향이 많이 보인다. 아티스트 부스에서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는 작품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만큼 부스 밖에서 이뤄지는 주관사의 체험 프로그램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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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도 출간된 만화 『세계의 끝과 마법사』의 작가 니시지마 다이스케(西島大介, Daisuke Nishijima)와 

일본의 주목 받는 싱어송 라이터 아오바 이치코(青葉市子, Ichiko Aoba)를 앞세운 유닛 밴드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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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지마 다이스케가 공연 내내 그린 작품들은 공연이 끝난 직후 관람객에게 전시품으로 공개되었다.


매년 전 세계의 큰 도시를 중심으로 아트북 페어가 개최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이 행사를 접하게 된다면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이 행사가 목적이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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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공식 홈페이지 화면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가 전면 중단되었지만, 홈페이지를 통한 버추얼 아트북 페어를 개최하기도 하면서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아트북 페어도 13번째 행사를 앞두고 있다. (11월 11일~14일, 클릭 후 이동) 이 사랑스러운 행사를 놓치지 말자!

 


 

책이 공간이 되고 공간이 아트북이 되는, ‘서울아트책보고’를 기대하며


현재 서울시에서는 내년 개관을 목표로 국내 최초 아트북 전용 복합문화공간을 준비 중이다. 시민 공모전을 통해 결정된 이름인 ‘서울아트책보고’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아트북을 접할 수 있다. 아트북 독자에 대한 저변을 확대하고, 수준 높은 예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서울시 구로구 고척돔 지하 1층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도서관, 서점, 활동‧체험공간, 휴식공간으로 운영된다. 내년에 들려올 개관 소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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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북디자이너, studio <즐거운생활> 대표

 

300여 권의 단행본을 디자인했다는 자그마한 자부심이 있다.  

더 이상 신선해 보이지 않을까 봐 업력을 밝히기 꺼리는 연차가 되었다.

평화로운 속세를 떠나 전쟁터로 향한 지 3년째,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즐거운생활>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