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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1

INSIDE

[세렌디피티] 유진서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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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 예기치 않은 메모나 물건을 발견하다
 
유진서적의 추억
1994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뜻밖의 재미 혹은 운 좋은 발견이라는 뜻을 가진 세렌디피티. 
 
이 세렌디피티 코너에서는 헌책이 보물이 되는 공간인 서울책보고에서 발견한 뜻밖의 재미를 하나하나 소개할 예정입니다. 헌책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 시절의 흔적은 헌책의 또 다른 매력이니까요. 지난 2년간 차곡차곡 모아둔 서울책보고의 보물상자를 열어 이제부터 하나씩 꺼내보겠습니다.  
 
2018년, 뉴욕의 한 도서관이 소장한 오래된 책에서 조지 워싱턴의 머리카락 한 줌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미국 초대 대통령의 머리카락을 간직한 오래된 책이라니! 대통령의 머리카락까지는 아니지만 서울책보고에도 80-90년대의 메모 혹은 사물을 간직한 헌책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답니다. 특히 생년문고를 만들기 위해 들춰보는 1980년대 문예지와 시집 사이에서 ‘시대의 유물’을 발견할 때가 많고요.
 
오늘 첫 세렌디피티에는 단풍잎과 책갈피, 무통장 입금증까지 보물이 종합선물세트로 들어있는, <1994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밍키서점/3,000원)을 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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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25일 초판본인 이 책 안에는 대상수상작인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외에 공선옥의 ‘우리 생애의 꽃’, 윤대녕의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 박완서의 ‘가는 비 이슬비’, 오정희의 ‘옛우물’ 등의 실려있답니다.

 

그리고, 그 소설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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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2월 11일 13시 20분, 김OO 님이 외환은행 서소문 점에서 김OO 님에게 현금 20,000원을 입금하셨네요. 요즘은 입금하면 카톡이나 문자로 그 입금 내역이 바로 전달이 될 텐데, 저 때는 하나하나 종이로 남겨두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장미 형상 심볼과 ‘외환은행’ 로고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으셨던 분은 회사 회계 담당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은행 계좌 목록을 따로 정리해두셨더라고요. 이 목록에서 지금은 사라진 은행 이름들이 눈에 띕니다. 이때가 95년이라는 게 은행 이름을 읽어내는 포인트죠. 1997년 IMF 금융위기 때 은행들의 합병이 일어나면서 은행 이름의 변천사가 복잡해지거든요. 이제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은행 이름인 상업은행은 현재 우리은행, 외환은행은 현재 하나은행, 조흥은행은 현재 신한은행의 전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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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태까지 다 에피타이저였고요. 오늘 세렌디피티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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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죠? 이런 형식의 책갈피. 손으로 쓴 글씨체로 명시를 적어 코팅한 후, 펀치로 뚫어 끈으로 매듭지은 90년대식 제작법. 아마 이 책갈피를 만드신 분은 여기에 어떤 시를 넣을까 고심하셨을 것 같아요. 서시를 고른 후, 좀 뿌듯하셨을 것도 같고요. ‘우러러’와 ‘나는 괴로와 했다’를 강조한 폰트가 특별히 눈에 띄네요.  예전에 서점에서 이런 책갈피를 많이 제작했죠! 역시나 이 책갈피 역시 서점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책갈피 뒷면에 적혀있는 서점 광고 한 번 보고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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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초중고 참고서·신간서적·월간지·종교서적

유 진 서 적

화양시장 육교옆

 


유진서적의 ‘유진’은 서점을 운영하시던 분의 따님 이름이었을까요?

유진서적은 지금도 화양시장 육교 옆에 계속 남아있을까요?

책갈피 하나에도 여러 궁금증이 생기고, 또 당시를 상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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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을 단풍잎을 책장 사이에 꽂아둔 그 시절 감성까지...

오늘 세렌디피티를 선사한 <1994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은, 이 코너의 첫 주자로 완벽하지 않나요?

 

 

글 박혜은

사진 박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