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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8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부화와 불화와 부활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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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부화와 불화와 부활의 시


                                  오은

 

 

어릴 때 먹은 음식이

취향을 결정한대


너는 줄곧 하나의 과자만 먹는다


젊을 때 읽은 책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대


네 손이 멈칫한다

손가락에는 과자 부스러기


부스러기처럼 남아 있는 거지

개중 어떤 책은

피처럼 림프처럼

네 몸속에서 돌고 돌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기억처럼


너는 《데미안을 떠올린다

새와 알과 신을

날아가고 부화하고 부활하는

하도 많이 읽어

페이지가 날아가고

이야기가 부화하고

감정이 기적처럼 부활하는


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생각한다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

이것들은 불화하는 것일까

사랑과 우정

방황과 방랑처럼

경계를 나누기 힘든 게 아닐까


부화와 불화와 부활을 거쳐

우리는 기울어지는 것이다

취향으로, 인생의 방향으로


청춘은

태어났다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다가

다시 태어났다가를 반복하는 일


손가락에는 과자 부스러기

당분간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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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향과 인생의 방향을 만들며 © 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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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