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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8

BOOK&LIFE

[SIDE B] 청춘은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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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파도타기, 감정디자인

Ep. 3

청춘은 사랑이지

 

고선영

작가

 

 

 

*

 

 

 

 

흔히 '청춘은 봄'이라고들 한다. 

청춘이 봄이면 은 무엇일까? 

'봄'하면 스프링처럼 땅 위로 쏙 솟아오르는 모습이 생각난다. 

안 보이던 것들이 '눈앞에 보인다'고 '봄'인가 보다.

 

몇 해 전 겨울에 길을 가다가 멈췄다. 

하얀 입김이 길게 뿜어져 나오던 날이었다. 

다른 계절은 없었던 것처럼, 지구에 생명 한 톨도 안 남은 것처럼 황폐했다. 

길가에 나무 한 그루가 나를 멈춰 세웠다. 목련의 겨울눈, 목련이었다.

자연의 털로 포근하게 감싸여진 그것을 만졌을 때의 첫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꿈틀대다 못해 이글거리는 생명이 그 안에 있었다.


'나, 여기 살아 있어.'


그 자리에 한참 동안 멈춰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소리 없이 알리는 겨울눈을 보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목련꽃이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순간 봄이었다.

이후부터 '봄' 하면 '소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긴 겨울을 견뎌낸 생명의 씨앗은 씩씩하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시 살아나는 봄. 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이롭다.


청춘 = 봄 = 소생


이 글을 마주하는 당신의 인생은 어디쯤인가? 청춘을 향해 가는가? 청춘에서 멀어져 가는가? 해마다 꼬박꼬박 봄이 온 것을 보면, 나의 인생에서 봄이, 청춘이 딱 한 번만 오란 법은 없다. 대신 해마다 청춘을 즐기려면 해야 할 것이 있다. 그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봐야 한다. 

청춘은 봄이라는 말에 수긍한다면 우리는 보아야 한다. 우리를 옥죄는 것이 아닌 발밑을 봐야 한다. 중력을 이기고 자신의 존재를 밀어내 보이는 민들레를 보자. 나무도 저마다 자신의 어린잎을 손가락 마디만큼 내보인다. 나무의 여린 잎도 보자.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도 보자.


지금, 당신에게는 무엇이 보이는가?


파티션을 마주하고 일을 하다가 한 번쯤은 고개를 내밀고 저 멀리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춘다. 아침에 나서면서 경비실에 계신 분과 눈을 맞춘다. 문득 생각나는 친구에게는 문자로 눈을 맞추고, 산책길에 만난 사람과도 눈을 맞춘다. 눈을 맞추는 것은 보는 것이다. 조금 시간을 내어 보는 것은 더 좋다. 보는 것만 잘해도 내 인생은 청춘이다.


 

두 번째는 '중력을 거슬러 보는 것'이다. 

우리 얼굴에서 중력을 거스르려면 탄력을 끌어올리는 시술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권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중력을 거스르라는 말에 땅속에 들어가 밀고 나오는 상상을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상이든 응원한다) 중력이 지구라는 행성에 적용된다고 하면, 인간에게도 중력처럼 개인에게 적용되어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패턴, 행동 양식, 습관이다.


자신이 해 오던 것 말고 다른 것을 해 보는 그것이야말로 개인의 중력을 거슬러 보는 것이다. 맨날 먹던 반찬이 아닌 새로운 반찬을 해 보는 것. 안 입는 옷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 맨날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보는 것. 그간 쳐본 적 없는 피아노를 치는 것, 관심도 없던 별을 보는 것, 한 번도 안 했던 머플러를 목에 둘러보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 집에 가지고 오는 것, 어떤 것이라도 좋다.


 

세 번째는 제일 강력한 것이다. 

바로 '사랑'이다.

보는 것과 중력을 거스르는 것을 건너뛰어도 세 번째 것을 하면 두 가지는 자동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의 그림이 너무 제각각이다. 대상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져서 하루에도 한두 번은 AI 목소리로 '사랑합니다, 고객님'같은 소리를 듣는 요즘에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믿어야 할까?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Ella Frances Sanders)의 두 번째 책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에 보면 '사랑'에 대한 다른 표현이 나온다. '네 간을 먹어 버릴 거야.'라는 말은 무시무시하지만 애정과 사랑이 담긴 페르시아어다. 널 위해 뭐든 하겠다는 의미다. '넌 내 오렌지 반쪽이야'라는 말은 당신이 나의 소울 메이트 또는 더할 나위 없는 애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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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말은 정말 좋은 말이지만 어쩐지 희미해진 기분이다. 너무 자주, 잘못 쓰여 좀 너덜너덜해졌다고 할까. 그래서 기왕 사랑을 하려면 뭔가 새로운 말을 해주는 사람과 하고 싶다. 문학작품과 영화, 드라마에서 '사랑'에 대해 표현한 것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이것이다.


'I see you'


영화 <아바타>에 나왔던 대사다. 이는 단순히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의미를 넘어서, 상대방의 마음과 영혼을 이해하고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바타 행성의 토착민인 네이티리와 지구인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를 통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 대사를 주고받았다.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말을 '사랑해' 대신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면 그 순간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사랑을 처음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좋아하는지, 온통 그 사람 생각으로 꽉 차서 어떤 실수를 해도 실실 웃게 되는 것.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나의 모든 것들이 사로잡혀서 노예가 되어도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마음이 생기는 것. 만난다고 하면 며칠이고 설레고, 못 만나면 땅 깊숙이 꺼져버리는 마음 말이다.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그 아지랑이는 딱 봄을 닮았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면서 봐주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하고 눈을 맞추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중력의 영향에서 자유롭다. 사랑에 빠지면 나이가 팔십이어도, 구십이어도 청춘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궁극의 방법은 '존재'를 온 영혼을 다해 받아주는 것이다. 계속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 말고, 내 멋대로 고치고 싶은 것 말고, 그저 그 존재를 환대하고 기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랑을 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방법은 위와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본다.


봄은 청춘이다.

청춘은 사랑이다.

이 글을 마주하는 당신의 마음에 새 숨이 돋기를.


오늘도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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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선영의

감정의 파도타기, 감정디자인>

감정의 파도를 맞을 때 살아남는 법: 

물을 보자. 어느 정도 높이로 파도가 치는지 그 파도 위에 올라타려면 얼마나 높이 뛰어야 하는지 먼저 보자. 보는 것이 먼저다. 겁먹지 말자 높아도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 당신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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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영

작가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애정결핍》, 엄마를 통해 나를 본다를 썼습니다.


서울에서 악어책방을 운영합니다.

 

sunyoungkoh@gmail.com

인스타그램 @abl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