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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7

INSIDE

[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조지훈 평론·수필집 《지조론》, 종합교양지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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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서울책보고 


Emotion Icon십삼만 여권의 가득한 헌책방, 서울책보고

서울책보고에는 다양한 분야의 초판본과 창간호 등 희귀한 책이 모여있습니다.

누군가 발견해 소개하지 않는 한 그냥 묻혀버리는 숨은 헌책들을 소개하는 〈오직, 서울책보고〉

김기태 교수의 글로 매달 여러분을 만나러 옵니다.


 

조지훈 평론·수필집 《지조론》

삼중당 / 1962년 12월 15일 중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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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의 평론과 수필을 모아 발행한 《지조론(志操論)》은 가로 128mm, 세로 188mm 크기에 세로쓰기 312쪽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장제책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을 구입했을 때 표지를 넘기자 친필로 "구름은 뒷지 마오"라고 쓴 다음 조지훈(趙芝薰) 이름 석 자가 선명한 서명이 있어 뭉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 내용은 모두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래 처음 정한 책의 제목은 '역사와 문화'였으나, "변하는 역사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나의 신념뿐이다."라는 생각에서 '지조론'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표지를 보면 '변절자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서문을 보면 또한 '지조론'이라고 한 또 다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는데,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고 하면서 이러한 지조는 특히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덕목인데 그 이유는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 선비의 도'에서는 「지조론」 등 9편의 글을 싣고 있으며, '제2장 혁명에 부치는 글'에서는 당시 정치‧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듯 「4월혁명에 부치는 글」, 「군사혁명에 부치는 글」. 「혁명정부에 직언한다」 등 8편의 글을, '제3장 민족의 길'에서는 「민족문화의 당면과제」 등 7편을, '제4장 문화전선에서'에는 「정치주의 문학의 정체」 등 7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장 서재(書齋)의 창'에서는 「고전주의의 현대적 의의」 등 8편의 글을 각각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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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노라면 그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조지훈 선생 특유의 '지조'를 느낄 수 있거니와, 당대에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전통문화에 관한 문화적 어른의 품격과 기개가 살아있다는 점에 감동하게 된다. 특히 4·19혁명 직후의 정신적 혼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지도자들과 민족문화가 나아갈 바를 준엄하면서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후련한 느낌이 오래 남는다. 특별히 다음과 같은 《지조론》의 한 대목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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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自尊) 자시(自恃)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申丹齋)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중략]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威儀)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 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후략]

 

 

 

 

 

💜

 

 

 

 

 

종합교양지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

한국브리태니커 / 1976년 3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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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기(韓彰琪, 1937~1997)를 발행인으로 하여 1976년 토박이 민중문화를 위해 창간한 월간 종합교양지. 창간사에서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 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창조의 일을 문화 쪽에서 거들겠다."고 잡지의 나아갈 길을 밝히고 있다. 곧 전통의 규범문화에 치이고, 외래 상업문화에 밀린 토박이 민중문화에 물길을 터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거들기 위함이었다. 1976년 3월에 창간해서 1980년 8월호(통권 53호)를 끝으로 신군부에 의해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폐간되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우리 잡지 최초로 기사의 내용이나 제목으로 가득 채웠던 잡지 표지디자인의 관행을 깨고 제호와 사진만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창간호 표지엔 쌀을 한 움큼 쥐고 있는 농부의 거친 두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싣고 속표지에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이라는 사진 제목을 적어 놓았다. 이 사진은 '농부'와 '쌀'이라는 두 개의 이미지를 통해 민중의 생명력, 이 땅에서의 삶의 가치, 전통의 중요성과 같은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컬러 사진이지만 갈색 톤으로 흑백 사진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처럼 《뿌리깊은 나무》는 창간호 표지에서부터 독자들에게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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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진은 쉽고도 수준이 높은 글, 민중에게 '지식의 열등감'을 주지 않고 '앎의 즐거움'을 주는 글들을 싣기 위해 노력했다. 편집방침은 우리 고유문화의 전통의 맥을 지키며, 사회의 발달과 변천에 맞추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문화를 찾아내는 한편, 유럽이나 미국식의 편집체제를 지향했다. 또, 사진작가를 기자로 활용한 최초의 잡지였다.

하지만 외국의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우리와 관계가 없으면 싣지 않는다는 주장을 지켰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의 '글 뜯어고치기'는 필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는데 한글전용, 가로쓰기, 지식인 언어와 민중 언어의 조화, 국어의 얼개와 어휘에 대한 탐구를 통한 편집과 교열―이것이 남의 글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당당한 이유였다. 

요새는 신문이든 잡지든 단행본이든 한글전용이 아닌 게 없지만 1976년 3월 이 잡지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면 한글전용은 없었다. 신문도 여성지도 모두 국한문 혼용이었다. 이 한글전용 잡지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세상은 비웃었다. 용기는 갸륵하지만 종이비행기처럼 머리를 땅에 박으며 추락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이 잡지의 뒤를 이어 한국의 모든 잡지들이 한글 전용으로 바뀌었고, 신문들도 두세 해 시차를 두고 한글전용으로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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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예술비평(음악·미술·무용·연극·영화·문학)·대중문화비평(신문·방송·광고·출판)·서평(매달 출판되는 것 중 두 권을 고름)은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또한, 판소리감상회를 마련하여 매주 한 번씩 독자들에게 봉사했다. 특히, 우리말이 일본말로 동화되고 있는 현실('철공소'가 되어버린 '대장간', '식당'이 되어버린 '밥집', '양조장'이 되어버린 '술도가', '서점'이 되어버린 '책방', '정종'이 되어버린 '청주' 등)에 대한 발행인의 고민과 우리말의 쓰임새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일본문화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뿌리깊은 나무》는 1970년대의 정신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면서 특히 문화사적 변혁운동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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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섬네일.jpg

 

김기태

교수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초판본 · 창간호 전문서점 〈처음책방〉책방지기이기도 하며, 

출판평론가, 저작권 및 연구윤리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롯데출판문화대상 심사위원장 및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한국 근대잡지 창간호 연구,

소셜미디어 시대에 꼭 알아야 할 저작권김기태의 저작권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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