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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7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서울책보고 개관 5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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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27

서울책보고 개관 5주년에 부쳐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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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책보고가 어느덧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잠실나루역 코앞에 위치한 건물, 혼자서만 새것 티가 나는 거대한 상자 모양 건물에도 점차 세월의 자취가 스며드는 듯하다. 이제 그 외관만큼은 어느덧 시민들에게도 익숙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는 한층 더 눈에 띄어, 익숙해지는 시간도 좀 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나는 서울책보고에 종종 들르는데 지금도 들를 때마다 어떤 동굴에 들어온 것마냥 기묘한 인상을 받는다. 말할 것도 없이, 독특한 인테리어 때문이다. 

서울책보고는 그 내부가 거대한 책벌레가 파고 들어간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최근 영화화된 <듄>모래벌레가 파고 들어가면 이런 길이 나올까. 필자로 하여금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에 빠지게 해준 이 고마운 작품은 서울책보고에도 어떤 새로운 인상을 부여해 주었다. 듄의 모래벌레는 거대한 몸으로 모래를 헤집고 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작중 희귀 물질인 ‘스파이스’를 생산해 낸다. 이 스파이스를 인간이 섭취하면 의식이 열리며 각성 효과를 얻게 된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필자는 서울책보고를 지나간 책벌레를 상상해 보았다. 책벌레가 헤집고 지나가면서 그 공간에 뿌려놓은 ‘스파이스’ 같은 수많은 헌책이 그곳에 있다. 그곳에서 운 좋게 마음에 와닿는 책을 고르는 독자는 눈이 크게 뜨이고 각성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스파이스를 섭취한 듄의 원주민들처럼 말이다. 다만 스파이스는 중독되기 쉬워서 한번 맛본 사람은 조금씩이나마 계속 섭취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된 사람은 그 즐거움에 중독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스파이스’를 섭취하고자 책을 펼쳐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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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군데군데 뚫린 서울책보고 내부에는 다양한 공간이 숨어있다. 여러 가지 사연을 품은 헌 책들이 아름답게 전시되고 작가들의 강연도 만날 수 있다. 서울책보고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옛날 같으면 헌책방은 헌책방만의 역할을 하고 강의실은 강의실만의 역할을, 전시관은 전시관만의 역할을 수행했을 터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도서 시장은 축소되었고, 새로운 세대는 서점을 이용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생긴 변화이다. 최근 서울 번화가를 돌아보면 카페를 겸하는 화려한 서점, 바를 겸하는 조그만 독립서점,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서점 등이 도처에 있다. 그것들은 과거와 달리 아주 깔끔한 인테리어, 열린 공간, 다소 고가의 상품(굿즈나 음료의 경우)을 제공한다. 예컨대 필자는, 책과 술을 컨셉으로 삼은 가게를 가끔 이용한다. 자주 가기에는 비싸지만 가끔 특별한 경험을 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새로운 세대의 독서란 그런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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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각종 경험과 체험, 온갖 기호를 함께 파는 공간이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책은 책만으로 소비될 수 없는 시대냐고 한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단 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러 오락을 연결 짓고 동시에 향유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사람들은 새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오면 콜라보 간식을 사 극장으로 향한다. 극장은 쾌적한 건 물론이고, 고객의 선택에 따라 압도적인 화면 크기에 3D 효과까지 추가할 수 있다. 게임은 어떨까?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PC방 및 보드게임 카페는 식당과 카페의 역할을 겸한다. 경우에 따라선 반쯤 숙박업소처럼 사용한다. 하다못해 편의점마저 파는 물품의 범위가 과거에 비해 터무니없이 넓어지지 않았는가.

요점은 현대가 복합 문화의 시대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세련된 것, 더욱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 앞으로 독서 문화에서 어떤 변화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상상하면서 그 변화를 선도하는 서울책보고의 모습을 기대하고 응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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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장르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고전문학의 재미를 알리고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수십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출간했다.

교양만화 플랫폼 <이만배>에서 고전 리뷰툰 플러스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