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5
SPECIAL[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시간이 필요해
헌책
―시간이 필요해
오은
시간이 필요해
네가 말한다
시간이 필요해
너도 말한다
둘은 다른 사람이다
시간이 부족한 너는
한 시간을 주겠다고 한다
잠시 후 칼같이 5분이라고 한다
불호령하듯 30초라고 고쳐 말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훑으며
그게 최대한 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그 안에 설명해달라고 설득해달라고
요약해서 정수(精髓)만 남겨달라고
시간이 귀한 너는
느긋하게 책장을 넘긴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말고 슬며시 미소 짓기도 한다
말이 오갈 때
가끔 시간이 멎는 것처럼
황홀함에 사로잡혀
행간으로 풍덩 뛰어든다
멎은 시간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네가 말한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해
더 빨리 더 많이 끌어당기는 시간이
숨 막힌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너도 말한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해
더 천천히 더 깊이 빠져드는 시간이
숨 가쁜 시대에 숨 고를 시간이
시간이 필요한 너희에게
헌책이 발견된다
헌책이지만 신대륙처럼
헌책이 발굴된다
헌책이지만 꿈나무처럼
숨죽이면서 살아나고
숨 트이며 자라나는 시간
둘은
실은, 한 사람이다
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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