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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1

SPECIAL

[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 8월의 도서 《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 + 나의 첫 초등학생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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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북클럽 8월의 도서

《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

+ 나의 첫 초등학생 독자에게 

 

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Emotion Icon<소설가 박생강의 금요북클럽>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꼭 읽고 싶은 분들,

책을 읽은 후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

책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서울책보고의 공식 독서모임 <금요북클럽>의 주제 도서 이야기로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금요북클럽>이 모이는 날은 매달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서울책보고 금요북클럽 8월의 도서는 도티끌 작가의 《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이었다. 이 책은 도티끌 작가가 언젠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스무 명의 사람들에게 쓴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다. 소박하지만 솔직하고 잊었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하는 독립 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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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 ⓒ 박생강 

 

 

북클럽에서 회원들은 이 책을 읽고 편지를 쓸 대상에 대해 같이 말해 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미처 생각이 나지 않아 답을 못했는데, 나중에 편지를 쓰고 싶은 존재가 떠올랐다.


바로 내 첫 책 《수상한 식모들》을 읽고 서평을 올려준 초등학생 블로거였다. 첫 책에 대한 서평 중 박민규 작가의 신작인 줄 알고 잘못 샀다는 서평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하여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2005년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 지금은 30대 초반의 나이가 됐을 그 블로거에게 편지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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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초등학생 독자에게 

안녕, 나의 첫 초등학생 독자.

네가 나의 첫 장편소설 《수상한 식모들》을 읽고 블로그에 올린 서평을 읽은 지도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구나. 그때 나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인터넷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 등에서 내 소설에 대한 서평 등을 찾아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너의 글을 읽게 됐어. 초등학생이었지만 촌철살인의 평에 마지막 문구가 굉장히 인상 깊었지.


이 소설의 문장은 내 논술 공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주변 사람들한테 한창 이 서평에 대해 떠들고 다녔어. 불쾌하거나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어. 그냥 약간의 씁쓸함이 있었다고나 할까. 아, 나는 초등학생조차 돕지 못하는 그런 작가가 되어버렸구나. 그 씁쓸함은 시간이 흘러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 좀 치유가 됐어. 당시 문창과 학생이었던 친구들이 중학교 때 《수상한 식모들》이 책 표지의 “칼 다리!”로 화제였다며 나름 소소한 인기가 있었다고 했지. 그 학생은 “사이다를 먹고 트림하며 돌아다니는 고등학생 형이 인상적이었어요.”라고 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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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식모들》 ⓒ 박생강 

 

지금 생각하니 초등학생인 너에게 내 소설의 문장이 ‘사이다를 먹고 트림’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도 같다. 지금은 좀 다를까? 그때 내 나이가 막 30대 초반이었는데, 이제 ‘초딩’ 블로거인 너의 나이는 당시의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됐지 싶네.

지금 너는 글을 쓰고 있니? 혹시 나의 소설을 읽고 소설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건가 싶어 문학의 길을 걸었을까? 아니면 소설은 하찮은 세계이군, 이런 생각으로 소설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근데 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 인생에서 글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됐으리란 생각은 들어. 나는 그 후 18년이 지난 지금도 글을 쓰는 업(어떤 업인가, 직업인가 업보인가?)을 하면서 지내고 있단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너에게 빚진 마음이 있었어. 나름 작가로 등단했는데 초등학생 블로거에게 글쓰기 도움조차 주지 못했던 아쉬움이랄까? 그리하여서 그 마음의 빚을 이 편지로 좀 갚아보기로 했단다. 지금까지 내가 글을 쓰면서 이어온 습관, 마음가짐 이런 것들을 적어보려 해. 그게 어떤 글쓰기 ‘스킬’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글을 쓰고 있어. 그 외에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마감이 있지 않으면 글은 거의 안 써. 나머지 시간은 그냥 일상인의 하루를 보내는 거지.

나는 소설, 칼럼, <수사연구> 잡지 기사 등 굉장히 다양한 글을 쓰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이 루틴 없이 시간을 미루면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된단다. 그래서 이 루틴을 지키는데 나는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두 시간은 과하니까 한 시간 정도 글 쓰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긴 해.

글을 쓴다는 건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거거든. 나의 내면을 관찰하고 내가 어떠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도 알 수 있지.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정제가 되기 마련이야.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실 자기 생각을 정제해서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 한 시간 동안은 오롯이 너와 너의 환경, 너의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언어로 옮기는 습관을 들이는 거지. 처음에는 문장이 서툴러도 그것은 나중에 다듬을 수 있어.


그럼 어떻게 문장을 다듬는 법을 익히느냐고? 여러 습관이 있지만 매끄럽게 문장을 다듬으려면 일단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좋아. 여러 책을 읽어보며 그 책의 문장들을 곱씹어 보는 거지. 아, 너는 이미 초등학교 때 《수상한 식모들》의 문장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더 도움이 되는 좋은 문장의 책들을 지금은 많이 읽었을 것 같기도 하네.


만약 글을 쓰는 훈련이 되지 않았다면 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겠어. 이미 잘 알려진 작가의 글을 다시 써보는 것도 재밌을 거야. 최근에 나는 《너는 지구에 글 쓰러 오지 않았다》라는 앤솔로지 소설집에 참여했어. 여러 소설가가 이상부터 J.D샐린저, 다자이 오사무,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소설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썼어. 단순히 고전소설을 이어 쓰는 방식의 소설들은 아니야. 작가들 고유의 관점으로 고전을 해체하고 자신만의 문체로 새로운 이야기를 짜냈지. 

음, 그때는 네가 초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30대에 접어들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수상한 식모들》을 너만의 방식으로 해체해서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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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지구에 글 쓰러 오지 않았다》 ⓒ 박생강 


나는 이 책 《너는 지구에 글 쓰러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러 지구에 온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를 돌아보게 하더라고. 다만 확실한 건 지구에서 글을 쓰는 건 현실의 지구와는 다른 지구, 내가 살아갈 지구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너는 초등학교 때 이미 논술 문장에 대해 고민하던 친구였으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우리 모두 지구에 글 쓰러만 온 건 아니지만, 너도 틈틈이 시간이 날 때 이 지구에서 너만의 지구를 만들어 가고 있기를 바라. 


P.S. 나를 기억한다면 《수상한 식모들》 이후로도 많은 책을 냈으니 그 책에 대한 서평도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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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

소설가, 수사전문지 《수사연구》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 등단했으며

 2017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 《빙고선비》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