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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9

SPECIAL

[책장이 있는 영화 이야기] 나도 동네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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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네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

《섬에 있는 서점》과 노팅힐 

 

윤성은

영화평론가, 작가

 

Emotion Icon영화학 박사이자 영화평론가인 필자가 영화와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장이 있는 영화 이야기>는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에이제이는 21개월 전 아내를 잃은 서점 주인이다. 그가 운영하는 아일랜드 서점은 섬에 있는 유일한 서점이고, 그가 21개월 전부터 절대로 넘지 않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던 에이제이는 어느 날, 서점에 아기를 버리고 자살을 한 여성 때문에 졸지에 아빠가 된다. 그렇게 축복으로 내려진 딸, 마야를 키우면서 그의 삶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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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 

앨리스 섬의 작은 서점에서 책을 둘러싼 세상에 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얼 제빈, 문학동네)은 섬 주민이면서 서점 주인이기도 한 에이제이의 소박한 육아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은 책이다. 아빠가 된 에이제이가 독서 모임을 하면서 새롭게 맺게 되는 인간관계와 그로 인한 여러 층위의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복선과 반전도 대구를 이루는 작품으로 미국 도서관 사서 추천 도서 1위에 올랐을 만큼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만하다. 

서점이 주요 공간인 만큼 애서가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인데 특히, 책이나 독서에 관한 문장들이 종종 독자들을 한 호흡 쉬어가게 만든다. 가령, “마야가 책에 다가가는 첫 번째 방법은 냄새를 맡는 것이다. 책의 재킷을 벗겨내고 코앞까지 들어 올려 딱딱한 표지가 두 귀를 감쌀 정도로 책 속에 얼굴을 묻는다. 책에서는 늘 그렇듯 아빠의 비누, 풀, 바다, 식탁, 치즈 냄새가 난다.”(106p) 같은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처음 책장을 펼칠 때 내 습관이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한,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119p) 라는 문장은 내게 적절한 시기에 다가온 책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114p) 라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대답이 될 ‘그 책’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지 상상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앞으로 그 책은 정말 나의 취향이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지에 따라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깔깔깔 웃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독서는 과대평가 되어 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훌륭한 작품들을 보세요.”(129p)와 같은 솔직한 대사들에서, 그리고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내 아내가 되어 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193p) 라는 에이제이의 엉뚱하면서도 진솔한 청혼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실웃음을 흘렸다. 영화평론가의 청혼은 ‘책’을 ‘영화’로 바꾸기만 하면 끝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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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문학동네 / 서적백화점 7,500원 

 

 

그러나 《섬에 있는 서점》을 읽을 때는 주의가 필요한데, 먼저 이 책에 인용되는 책들을 몽땅 사들이느라 카드값이 많이 나올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해야 하고, 자신의 자녀를 마야와 비교하지 않도록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에이제이처럼 동네서점을 하고 싶게 만든다! 은퇴 후 귀촌해 작은 책방을 열고 소일거리를 하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다. 오래 준비한다면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고 전세금을 빼면 어디쯤에 몇 평짜리 공간을 구할 수 있을지,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게 만든다. 실제로 ‘섬에 있는 서점’의 리뷰를 읽다 보면 이 책 때문에 동네서점을 열었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처럼 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객기를 막아주는 소심함을 반드시 장착하고 책을 펼치시길. 

 

어쨌든 이 책을 계기로 상상은 해 볼 수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동네서점의 매력을 모르겠는가. 내 코에 와 닿는 종이 냄새의 중후함, 읽으라고 읽어달라고 말하는 책들의 아우성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애서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을 읽는 거라고. 그러니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의지로 안 되는 사람들은 서점 주인이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홍대 근처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동네서점 투어를 다녔던 적이 있다. 서점마다 인테리어도 다르고, 들여놓는 책들도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전까지 대단지 아파트에만 살던 내게는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주인의 캐릭터를 상상해 보는 버릇도 생겼다. 음악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곳과 인문학 서적이 많은 곳의 분위기 차이만큼이나 주인들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은 사뭇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주인이 있을 때는 내 예상과 싱크로율을 생각하면서 괜히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혹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요?”처럼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이면 아무거라도 대개 살갑게 받아주었던 것 같다. 취향과 성격은 달라도 서점주인들은 공통적으로 꼼꼼하고 섬세한 데가 있어서 없는 책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구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곤 했다. 단골을 만들 만큼 자주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런 식으로 맺었던 관계들은 잉걸불처럼 이따금 떠오르는 동네 책방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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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스타인 ‘애나 스콧’과 런던의 노팅 힐에서 여행 전문 서점을 하는 ‘윌리엄 태커’,

두 사람의 로맨스가 이 곳 서점에서 시작된다. ⓒ 다음영화

 

내가 꿈꾸는 서점은 어쩌면 이런 경험들에서 좋았던 모든 것들이 짜깁기 된 장소일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서점 주인이 〈유브 갓 메일〉(1999)의 케슬린과 노팅힐(1999)의 윌리엄, 미드나잇 인 파리(2012)의 가브리엘을 합쳐 놓은 듯한 이미지인 것처럼. 언젠가는 오랫동안 책을 고르고, 느긋하게 읽고, 책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내가 직접 기획하고 꾸미고 만들어 가는 책방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좀 더 욕심을 부려 손님들의 상상 속에서 말수는 적어도 상냥하고 사려 깊고 성실한 주인이 되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섬에 있는 서점》의 주제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공간으로서 서점의 역할-과 의미에 있으니까. 덧붙이자면, 《섬에 있는 서점》의 원제는 〈The Storied Life of A.J.Fikry〉이고, 2022년에 영화화된 바 있다. 한국에서도 만나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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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스토리드 라이프 오브 A.J. 피크리〉(2022) 포스터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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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작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그런대로 행복한 영화 호사가

지금은 문화 전반에 관해 얘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도 만들고 있다.

여행 에세이집 《세도시 이야기》(공저), 짧은 소설로 릴리 이야기를 썼다.

 

 

 

 

 

섬네일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2)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57645#photoId=785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