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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9

BOOK&LIFE

[SIDE B] 사람 냄새 맡으러 동네서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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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사람 냄새 맡으러 동네서점에 간다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은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교수이자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인 필자의 글을 통해,

치유, 개선, 회복의 방법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등하굣길에 어김없이 들르던 문구점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작은 서점이 있었다. 맞벌이하시던 부모님은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내가 알아서 사서 준비할 수 있도록 용돈을 주셨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공간에 빼곡히 쌓여 있는 책들과 문제집들 사이로 사장님이 얼굴을 내밀며 무엇을 찾는지 물으셨다. 필요한 책을 사서 나올 때면, 하이틴 잡지와 연재 만화책들이 눈길을 끌며 유혹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동네에 서점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책이 필요한 곳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앞에도 서점은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구역에 겨우 하나씩 대형 체인 서점이 자리하고 있고, 그마저도 찾기 힘들면 온라인 서점을 이용해야만 한다. 물론 온라인 서점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책을 찾아 그 책에 대한 요약된 소개내용을 통해 파악한 뒤 주문키를 누르기만 하면, 하루 이틀 내로 받아볼 수 있으니 정말 편리한 신세계임은 분명하다. 나 또한 이동하는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집에서도 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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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앞 문구점과 서점이 사라진다. 

사진은 4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이 문을 닫은 모습. ⓒ 베이비뉴스

 

 

그러나 때로는 특유의 책 냄새 나는 동네 서점이 그립다. 최근 들어 동네 서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는 서점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편리함과 자동화로 대표되는 온라인 시대와 AI 시대에 오프라인과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이고 변화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대감을 이루고 살아가야만 안정감을 느끼고 제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편리함을 향한 욕망은 그 끝을 모르는 기술개발로 이어지면서 결국 인간을 잃고 있다. 식당과 카페에 가면 나를 반겨주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두고 물어주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표정 없이 메뉴를 검색하고 고르면, 번호와 함께 내가 선택한 것이 나온다. 심지어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인가게, 무인카페, 무인 서점까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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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무인으로 운영하는 다양한 무인 점포가 일상화되었다. 

사진은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한 무인 반려동물용품점 쿠키뉴스

 

 

팬데믹 시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 가운데에는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한 경우들이 적지 않다. 일주일 동안 친근하게 말 한마디 나누는 사람 없이 시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없어 외롭고, 어디서 어떻게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렇다. 고독하다. 인간은 고독할 때 가장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독감은 언제든 위험에 노출되고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만든다. 긴장되고 쉽게 위기감을 느끼고,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만다. 이는 심리적 고통을 유발하며 마음의 건강을 잃게 만들 뿐 아니라, 다양한 신체 증상과 질병을 동반하며 신체적 건강까지 악화시킨다. 

 

최근 들어 주변에서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나 또한 함께 방송하며 오랫동안 알게 된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나 특정 주제의 책을 읽고 자기 생각들을 나누는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매번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읽고 함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가 삶에 신선한 자극이 된다. 요즘 유행하는 독서 모임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 특정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누군가를 만나 친밀감을 느끼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갖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독서 모임은 이러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공통의 책을 읽고 비슷한 관심사에 대해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이다. 동네 서점은 카페와 스터디 장소를 제공하면서 독서 모임과 독서토론의 장소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관심 있는 작가와의 만남 등을 주선하며 독서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즉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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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에서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독서 모임 <금요북클럽>이 열리는데 많은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한다.  

크기는 대형 서점이지만 사람 냄새 나는 서울책보고는 동네 서점에 가깝다.

 


또한 동네서점은 주인의 취향대로 책을 배치하고 소개하기도 하며, 대형 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서점 공간 안에는 주인의 색깔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 다양한 특색을 갖춘 서점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사람 냄새가 궁금하고 맡고 싶어 동네서점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 ‘여행자의 동네서점’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 책방’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고, 다양한 동네서점과 그 주인들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어렵게 사람을 만났어도 그 사람의 역사와 생각을 알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함께 있어도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묻기보다, 각자 휴대폰이나 모바일을 통해 자신과 멀리 떨어진 세계의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이러한 시대에서 동네 서점은 사람을 느끼고 만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대안이 되고 있다. 글과 책은 글쓴이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이고, 그 책을 선택한 것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해주고, 그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통해 서로의 세계가 만나며 함께 하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동네서점은 사람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즉 사람 냄새나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지영 교수 프로필 섬네일_최종.jpg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도록 코칭하고 있다. 

《정서 조절 코칭북》, 《생각이 크는 인문학:감정》, 《어린이 심리 스쿨》,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등의 다수의 감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KBS1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의 <뉴스브런치 부설 심리연구소>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이지영 교수의 감정코칭>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