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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9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고딕, 감성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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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9

고딕, 감성의 문학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고딕은 대중에게 제법 친숙한 개념이다. 학교 수업에서 배운 고딕 건축양식을 비롯하여 직간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황량한 자연 풍경, 무채색을 띠는 우중충한 성채, 뾰족한 첨탑들, 수수께끼로 찬 낡은 복도 등이 그것이다. 때로는 여기에 반투명한 빛을 띠는 유령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러한 소재를 중심 삼는 책이 바로 고딕 문학이다. 고딕 문학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중반 즈음,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영국이 본격적으로 산업화한 시기이다. 이성과 과학이 지고의 가치를 지니는 산업 사회가 도래하자 19세기 사람들은 어떤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은 이성의 파도 아래 과거의 찬란한 낭만과 미신, 그 외 고전적 유물이 영영 사라질까 걱정했다. 그리고 고딕을 찾아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근대 영국을 빛낸 다양한 고딕 작가를 접할 수 있다. 앤 래드클리프, 메리 셸리, 에드거 앨런 포, 브램 스토커, 브론테 자매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어떤 분들은 의구심을 느낄 수 있다. 고딕 하면 대체로 호러 장르로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라든지 앤 래드클리프의 《숲속의 로맨스》는 현대인이 보기에 호러라기보다, 모험물에 로맨스를 합친 것처럼 보인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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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했을 때에는 작품의 음산함과 인물의 야만성 때문에  반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폭풍의 언덕》과 《워더링 하이츠》는 같은 작품이다. 표지 이미지 © 교보문고

 

이러한 현상은 고딕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잡은 데서 나온다. 고딕 문학은 오늘날 호러 문학의 한 갈래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훨씬 포괄적이다. 고딕 문학의 핵심은 공포라기보다 감성이다. 첫 문단에 쓴 고딕의 필수 요소들을 다시금 살펴보자. 황량한 대지를 보면 보는 사람의 가슴도 소용돌이치고, 어두운 첨탑 아래 서면 불안한 기분에 잠긴다. 때로는 우울한 풍경에 잠식되어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이 감성을 이해하면 왜 위에 언급한 작가들이 고딕 작가로 분류되는지, 나아가 그들 중에 왜 유독 여성 작가가 많은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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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

 

평소 필자는 리뷰를 위해, 혹은 단순히 재미로 여러 고전문학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국가, 성별에 따른 특징이 느껴지는데 이 또한 독서의 소소한 매력이다. 어디까지나 경향의 문제지만, 남성 작가들은 사건 밖에서 관찰하고 서술하는 느낌이 강한 반면 여성 작가들은 자신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여 그 감정을 그대로 서술하는 느낌이 강하다. 달리 말하면 여성 작가들이 휘몰아치는 감정표현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불안하며 휘몰아치는 감성이 포인트인 고딕 장르에서 여성 작가들이 활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고딕 문학에는 작가뿐 아니라 독자 역시 여성이 많았다. 19세기 여성들은 《제인 에어》를 읽으며 붉은 방에서 소스라치는 어린 제인과 함께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혹은 《숲속의 로맨스》를 읽으며 으스스한 수도원에 자리잡은 불행한 아가씨, 아들린에 자신을 이입했을 것이다. 

고딕을 즐기는 소녀들은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노생거 수도원》의 여주인공은 친구의 저택에 초대받고 그 저택이 한때 수도원이었다는 걸 알자 크게 흥분한다. 그러나 저택은 이미 인테리어를 새로 했고, 으스스하고 전설로 가득한 방들은 온데간데없어 크게 실망하고 만다. 동 작가의 《이성과 감성》역시 이러한 유행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작품에는 이성적인 언니와 감성적인 여동생이 등장하는데, 감성 그 자체인 여동생은 늘 황야와 숲의 쓸쓸함을 감상하며 눈물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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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

 

물론 고딕의 서사는 훨씬 많은 것을 함의한다. 많은 고딕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황량한 자연, 비밀을 품은 저택을 탐험한다. 작품은 불안한 분위기에 잠기지만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제인 에어는 단란한 가정을 얻고, 폭풍의 언덕은 평화를 찾으며, 아들린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해진다. 이들의 서사는 행복에 이르기까지의 길고 긴 시련인 것이다. 

헌데 처음부터 행복한 서사를 굳이 제쳐두고, 시련의 분위기에 온 힘을 쏟은 고딕 문학이 꾸준히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시련의 낭만’과 ‘아름다운 우울감’을 소망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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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은 책으로 《고전 리뷰툰》이 있다.

 

 

 

 

 

섬네일 :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6) 중 한 장면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69#photoId=35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