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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7

INSIDE

[오늘의 헌책] 원조 책받침 여신부터 식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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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헌책 : 드라마 시대

저 서울책보고 서가 한구석에 오랫동안 숨어있었으나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헌책의 쓸모와 오늘의 트렌드를 연결하는 새로운 코너

 

 *

원조 책받침 여신부터 식모까지... 

《TV 라디오 드라마 작법》, 하유상, 성문각, 1990년 3월 1일 발행

 

 

 

이번 호 ‘오늘의 헌책’은 이번 달 웹진 주제인 ‘드라마 시대’에 맞춰 골라보았습니다. 바로 《TV 라디오 드라마 작법》! 어느 날 대광서림 서가에 꽂혀있던 이 드라마 작법 책을 발견하고 잠깐 넘겨보던 저는 이 작법 책 또한 시대를 반영하는 소중한 자료라는 걸 바로 깨닫게 되었죠.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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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떤 짤(사극 신하 짤 - Google 검색)이 생각나는 간지를 넘기면, 이 책에는, 이제 더 이상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거나, 출연하더라도 주인공의 엄마 혹은 일일극의 악역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던 시절의 젊은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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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상아 님은 이제 드라마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뵙는 것 같아요. 작품활동을 찾아보니 2018년, 한 방송사의 일일드라마에 나오셨던 게 가장 최근이더라고요. 한때는 청춘스타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셨는데요. 흔히 


#원조_책받침_여신 



이라고 하죠. 원조 책받침 여신으로는 배우 이상아 님 외에도 배우 이미연 님, 해외배우 소피 마르소 님, 피비 케이츠 님이 계신답니다.Emotion Icon


그런가 하면, 한때는 미니시리즈와 주말 드라마의 주인공을 했던 배우가 이제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일일드라마에 출연하는 상황을 접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이었던 과거가 있는데, 이제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역할이라... 세월의 흐름이 역할을 바꾸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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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 생활을 하시며, 현재도 우리와 친근한 노배우 혹은 중견 배우분들도 계십니다.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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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토일 드라마에서 만났었던 배우 엄정화 님,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신구 선생님까지. 신구 선생님은 얼마 전에 연극 무대에서 뵌 적이 있는데요. 그 많은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시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답니다.Emotion Icon

 

책의 전반부에는 드라마 작법 설명이 실려 있고, 후반부에는 실제 작품 2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뒤에 실린 구체적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당시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더라고요. 여기서 같이 살펴보고 싶은 작품은 한 방송사의 ‘어린이 드라마’라는 장르로 방영한 드라마 <아빠의 얼굴>입니다. 예전에는 ‘어린이 드라마’라는 장르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각본 내용을 들어보면 더 놀랍습니다! 이 책에는 <아빠의 얼굴> 중에서도 ‘딸의 혼담편’이 실려 있어요. 1969년에 방영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한 번 탐구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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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오는 사람들> 명단만 봐도 생경합니다.

 

 

임호기 (50세)

허  씨 (44세)

임지열 (24세)

  지홍 (23세)

  지선 (22세)

  지애 (12세)

원선 엄마 (45세, 인텔리 여성)

김하성 (40세)

젊은 사장(35세)

미스리 (여사무원)

식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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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름 표기부터 흥미롭죠. 아빠와 자식들은 모두 성과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엄마만 이름이 없다는 점. 오직 성만 표기된 ‘허 씨’입니다. 처음에는 ‘허 씨’가 누구일까? 한참을 생각했더랬죠.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허 씨’는 엄마였더라고요. 왜 엄마만 이름이 없을까. 성씨라도 써준 걸 감사히 생각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눈에 띄는 점은, 자녀가 네 명이나 된다는 점입니다. 60년대에 자식 네 명이면 평균 가족 인원수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같으면, 특이하게 많은 형제 자매수를 자랑하는 가족이겠지만요. 엄마 ‘허 씨’와 첫째 아들 ‘임지열’의 나이 차이가 스무 살밖에 되지 않는 걸 보니, ‘허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한 것 같죠?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이가 띠동갑에 이른다는 점도 눈여겨보게 됩니다.


특히, 등장인물 중 세 명의 여성을 지칭한 호칭이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원선 엄마(인텔리 여성)’

‘미스리(여사무원)’

‘식모’.............................................. 

 

 

무려 ‘인텔리 여성’이었던 ‘원선 엄마’는 그 어디에도 본인 이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네요. 극 중에서 스토리에 긴장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인데도 말이죠. ‘허 씨’는 그래도 성은 있었는데, ‘원선 엄마’는 많이 배운 ‘인텔리 여성’인데도 대본상에 이름도 적히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스리’. 지금은 어느 직장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미스’와 ‘성’을 붙여 호칭하지 않죠. 지금 사무실에서 그런 식의 호칭을 한다면 엄청난 무례일 거예요. 


이 드라마가 방영된 해가 1969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었습니다만, ‘미스리’라는 호칭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무려 ‘2000년’에 이런 신문 기사를 발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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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박장규 용산구청장 취임 기자회견 때였다회견 뒤 인사를 건넸다. 박 구청장은 명함을 받자마자 말했다.  

, 미스리구먼.” 네에?”하며 말꼬리를 사납게 올렸는데도 그는 속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 결혼하셨어요?”

 

직장 여성들 대부분 불려봤을 미스~’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호칭이다

미스리는 늘 커피를 타거나 타자를 치고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사무실 보급형 커피자판기 중엔 아예 이름을 미스리라고 붙인 것도 있다

그래서 미스 리라고 불리면 상대방이 자신을 가볍게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건 서울시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미스~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는 정말 미스리라고 불리고 싶지 않았던한 여성 공무원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서울시청 8급 공무원인 이정선(26)씨는 사내 전산망에 도저히 미스리가 되고 싶지 않은 이의 항변이라는 글을 올렸다

곧 화제에 올랐다. 이정선씨는 남자들끼리는 9급인데도 서로 박 주사, 김 주사 라고까지 부르는데

6급 이하 여성 공무원들은 결혼과 상관없이 미스 아무개로 불리는 게 싫었다고 말한다.

 

한달 뒤 고건 서울시장은 미스리 엄금령을 내렸다

시장 지시가 내린 뒤, 시청에선 많은 미스 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커피 타기, 문서 작성 등 잔심부름은 여전히 여성 공무원들의 몫이다.

 

이씨는 여자들에겐 늘 반복적이고 주변적인 업무만 주어진다고 했다

자신도 중요한 업무를 맡고 싶은데, 좀처럼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밑자리에서만 뱅뱅 돌까봐 조바심도 난다고 했다.

 

_‘미스리는 없다, 한겨레, 2000.7.29., 민권사회2edigna@hani.co.kr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2420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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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 엄마가 ‘배운 여자’였어도 그 이름이 없었듯, ‘미스리’는 ‘여사무원’의 대표 호칭처럼 이 대본에 소개되어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식모’.

 

 

식모 ; 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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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녀〉는 1950년대 한국의 한 중산층 가정에 하녀가 들어와 살다가 

주인 남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이후 하녀의 집착과 분노 속에 

파괴되는 가정을 그린 스릴러 영화야. 

이 영화는 1960~1970년대 한국에 흔했던, 

하지만 지금은 잊힌 사람들의 비극에 그 기반을 두고 있어. 

바로 ‘식모’란다. 요즘에는 ‘가사 도우미’라는 직업이 있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야. 

식모란 1950년대 후반 이후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며 

주로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와 남의 집에서 숙식하며 

그 집의 가사노동을 도맡았던 젊은 여성들을 의미해.


네 이모할머니가 사시던 오래된 아파트를 떠올려보면 부엌 옆에 창고라고 하기엔 뭐하고 

방이라고 부르기엔 좀 작은 공간이 있었잖아. 

그건 ‘식모 방’으로 설계된 공간이었어. 

당시 그 정도 규모의 아파트면 식모를 들이는 게 상식이었고 그 상식이 설계에 반영된 것이지. 

웬만한 살림을 꾸려가는 가정에서 식모를 들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영화 〈하녀〉에서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주인 역시 큰 부자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이었던 것처럼.


심심산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아빠의 선배 한 명이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국민학교 졸업할 때 남자애들은 대개 읍내 중학교에 간다고 좋아했는데 여자애들은 전부 펑펑 울었어. 

걔들은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죄다 식모로 나가게 돼 있었던 거야.” 

가난한 집에서 입 하나 덜자는 절박함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은 물론 단칸 셋방살이, 판잣집 살림에서도 너도나도 식모를 두었던” 

도시 사람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져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식모’로 고달픈 타향살이를 해야 했단다.


식모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했고 

노동법 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주인집의 ‘하녀’처럼 일해야 했어. 

주인집의 호통과 학대에 시달리며 모진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이가 부지기수였지.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주인아주머니의 물품을 훔쳤다고 사형해 죽인 일, 

5~6년이나 열심히 일했건만 한 푼도 못 받고 그 집에서 내쫓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앙일보〉 1966년 1월13일).”


_김형민(SBS Biz PD),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시사IN,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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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가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한 대목을 가져와 봤어요. 당시 식모가 어떤 존재였는지 조금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이죠? 그렇게 웬만한 가정에서 식모를 들이는 게 흔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아빠의 얼굴>의 가족들은 식모를 둘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말 그 당시에는 집안에 식모를 두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었던가 봐요.


아이쿠. <나오는 사람들> 호칭만 분석해도, 벌써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말았네요. 호칭 분석만 해도 이 정도인데, 실제로 극본을 보면 지금 감수성으로 보면 정말 생소한 대사와 장면이 많이 나온답니다. 

 

혹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세요? 그럼 서울책보고 1~3번 서가인 대광서림에서 《TV 라디오 드라마 작법》을 한 번 찾아보세요.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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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 탤런트 이상아 © 스포츠서울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545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