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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2

BOOK&LIFE

[SIDE A] 책 읽지 않는 시대, 책을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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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사공영

유유출판사 편집자


 

 

 

매년 4월이 되면 많은 편집자들은 그간 만들어 온 책을 돌아보며 ‘책에 관한 책’을 찾습니다.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에 ‘오늘이 책의 날이라고?’ 하며 새삼 책을 떠올릴 독자가 있다면 그때 권할 책을 미리 골라 놓는 거죠. 혹시 2~3월쯤 책에 관한 책을 만들고 있다면 마음이 조금 바빠집니다. ‘오늘이 책의 날이라고? 그럼 책이나 한 권 사 볼까?’ 하는 진귀한 독자가 있다면 딱 좋은 선물이 될 만한 따끈따끈한 신간을 건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주 많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책의 날을 기억하는 독자를 위해 편집자들은 책의 날을 잊지 않고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일하는 출판사에서는 책과 책의 공간, 책 주변 사람들에 관한 책을 꾸준히 냅니다. 그 덕에 저는 매년 4월마다 책에 관한 책을 만들고 있지요. 생선 가게를 지나치지 못하는 고양이마냥 20년째 도서관을 드나들다가 지역 도서관의 운영위원이 되고 전 세계 도서관 이야기가 담긴 책까지 만들어 버렸다는 임윤희 편집자의 『도서관 여행하는 법』과 서가로 둘러싸인 서점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30년 넘게 책방 순례자로 살며 자기 서점까지 꾸려서 그곳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아 엮은 윤성근 작가의 『서점의 말들』이 작년과 재작년 책의 날에 맞춰 펴낸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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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책에 관한 이야기를 기다리는 독자는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지요. 책 읽으란 잔소리는 싫어도 책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은 재미있어 하는 독자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도서관도 좋아하고 서점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좋아서 독자가 되고 서점이 좋아서 책 읽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가 되는 이유겠지요. 


올해는 이런 독자를 기다리는, 매년 책의 날을 기억해 두었다가 책 찾는 독자에게 선물 같은 책을 안겨 주고 싶어 하는 편집자들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문학, 경제경영, 역사, 실용, 인문교양, 에세이, 사회과학, 과학 분야에서 탄탄히 경력을 쌓아 온 여덟 명의 편집자를 저자로 섭외했지요. 사실 처음부터 책의 날에 맞춰 낼 계획은 아니었는데 만들고 보니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책의 날에 딱 맞는 책들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책을 쓴 편집자 저자들이야말로 책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신뢰하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도 꾸준히 책을 만들고 정말 재미있으니 함께 읽어 보자고 독려하는 사람이니까요.

 

책보다 재미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 시대에 왜 굳이 책을 읽어야 하냐고 질문하는 독자를 생각하며 편집자는 고민합니다. 

내가 만드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오로지 책으로만 전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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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영 편집자의 책상

 

문학책 편집자는 작가와 독자 사이를 조율합니다. 작품이 될 만한 고유한 세계를 가진 작가를 발굴해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모양의 책을 만들어 내지요. 역사책 편집자는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신뢰할 만한 자료와 관점을 제공하는 독자 맞춤형 전문가입니다. 경제경영책 편집자는 경제의 흐름을 반 발자국 앞서 내다보고 정확히 ‘지금’ 필요한 지식을 골라 읽어 보라 제안하지요. 실용책 한 권은 맛있는 음식의 레시피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게 합니다. 넘쳐나는 사회 이슈 속에서 어떤 말이 더 들려야 하고, 어떤 말이 누구에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사회과학책 편집자이지요. 에세이 편집자는 ‘책이 될 사람’을 찾고, 인문교양책 편집자는 사회가 간과하는 가치와 삶을 책으로 엮어 냅니다. 물리학이나 수학 같은 학자들의 전문 지식이 과학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 재미있고도 쓸모 있는 쉬운 지식이 되지요. 


도서관과 서점을 채우고 독자를 돕는 책이라는 물건은 이런 사람들의 고민과 시간으로 만들어집니다. 

편집자가 있는 한 책은 계속 만들어질 거고, 조금 적더라도 읽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편집자들은 책 만드는 일을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올해 책의 날에는 책 앞에 선 당신들을 그리며 매일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의 이야기, 책과 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서가를 채운 책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책 속의 이야기도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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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사공영

출판편집자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면 뭐든 해 보고 싶어 하고, 독특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조금도 쉽지 않은 책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유유에서 일하며 김겨울 작가의 《책의 말들》, 김은경 작가의 습관의 말들,

여덟 명의 선수 편집자들이 쓴 편집자공부책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