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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_META_TITLE_ 휴관일입니다.


Vol. 14

INSIDE

[오늘의 헌책] 절판시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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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헌책 : 절판 시집의 추억

저 서울책보고 서가 한구석에 오랫동안 숨어있었으나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헌책의 쓸모와 오늘의 트렌드를 연결하는 새로운 코너

 

 *

절판 시집의 추억 

《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 김형영, 문학과지성사

《우울한 비상의 꿈》, 이태수, 문학과지성사

《작아지는 너에게》, 홍영철, 문학과지성사

《전쟁과 평화》, 이기철, 문학과지성사

 

  

이번 호 웹진 주제는 절판 시집의 추억입니다. 절판된 책의 종류는 참 많지만, 왜 하필 절판된 시집에 관한 추억을 주제로 삼았을까요?

 

그 이유는, 서울책보고에 시집이 많고, 서울책보고에 시집을 찾으러 오시는 분들도 많으며, 서울책보고에 절판 시집도 많기 때문이죠Emotion Icon

 

마음먹고 서울책보고 서가를 거닐다 보면, 얼마든지 절판 시집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어느 날, 그중에서도 특별히 #상현서림 서가에서 다수의 절판 시집을 발견하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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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시집들 이어서일까요? 시집 제목이 모두 심상치 않습니다.

 

#모기들은_혼자서도_소리를_친다

#우울한_비상의_

#작아지는_너에게

#전쟁과_평화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고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특이하다고도 볼 수 있는 시집 제목들.

 

*

먼저, 김형영 시인의 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라는 시집을 한 번 볼게요. 이 시집은 문학과 지성 시인선’ 6번으로 이 시리즈의 초기 시집입니다. 초판은 1979년에 나왔고, 서울책보고 보유본은 1991년에 나온 4쇄 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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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초가을에 쓴 시인의 자서는 이렇습니다.

 

1973년부터 오늘까지 쓴 작품 전부다.

내장을 다 꺼내놓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지금과는 다른 느낌인, 가는 펜선으로 그린 김형영 시인의 캐리커쳐가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 컷을 그린 이가 김승옥(金承鈺)’이라고 적혀 있네요!!! 두 문인은 오랜 지기였던 것으로 보아 친구 시인의 시집 출간을 기념해 소설가 김승옥이 솜씨를 발휘한 것 같습니다.Emotion Icon

 

이 시집을 조사해보다가 김형영 시인께서 작년에 숙환으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는데요. 1969칠십년대시 동인을 결성하셨었고, 1970년부터 30여 년간 월간 <샘터>에 근무하셨다는 내력과 더불어, “주검을 연구용으로 기증”(최재봉, 한겨레 2021.2.15. 기사)하셨다는 마지막을 접하니, 이 시집이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시집에서 지금의 계절에 어울리는 시 단상의 일부를 나누고 싶네요.

 

 

, 계절이여

올해의 봄을 봄이게 하라

내가 죽어서

강물로 흘러서

그대의 산속으로 들어가 푸르게 하리

 

 

**

두 번째 시집은 이태수 시인의 우울한 비상의 꿈입니다. 이 시집 또한 문학과 지성 시인선’ 24번으로 1982년에 초판이 나오고 1986년에 나온 4쇄 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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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 또한 캐리커처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이 캐리커처는 시인 김영태 선생님이 그리셨습니다. 시인이자 음악무용평론가화가로서 전방위적 예술 활동을 펼치셨던 김영태 선생님의 그림으로 2013년에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전시도 열렸답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 캐리커쳐에는 이런 비하인드가 있네요.

 

그동안 문지 시인선의 얼굴 캐리커처는 시인이자 화가인 이제하(77)와 김영태(19362007)가 번갈아 그렸다. 이제하 시인은 당시 일반 화가들에게 그려 달라고 하면 화료(畵料)를 엄청 달라고 하니까 미술대(홍익대) 나오고 문인들과 친했던 김영태와 내가 캐리커처를 그리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영태가 작고한 이후 이제하가 대부분 맡아 그렸으나 최근 새로운 분위기를 원하는 시인들의 요청이 잇따르면서 다른 스타일의 얼굴이 부쩍 많아졌다_동아일보 2014120일 기사.

 

그리고 이 시집의 기본 디자인은 오규원 시인이 하셨다고 하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학과 지성 시인선 앞표지 스타일에는 숨은 이야기가 많네요. 이쯤에서 19829월에 이태수 시인의 쓴 자서를 한 번 읽어볼까요.



두 번째 시집을 묶는다.

61편 중 제1부의 작품을 포함한 30여 편은 올해 씌어진 것들이다.

그 나머지는 그림자의 그늘(79) 이후에 발표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조금씩 손을 대기도 했다.


살아가고 시를 생각하는 일이 갈수록 어렵고 두렵다.

하지만 다시 허물을 벗어야 할 차례다.

더 깊은 눈을 위하여, 더욱 크고 부드러운 가슴을 위하여.

 


이 시집은 첫 시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어떤 사랑 나라전문입니다.

 

 

사랑으로 빚어진 떡, 사랑으로

빚어진 술, 사랑으로 만들어진

안주, 사랑으로 만들어진 바람만

마시고 먹는 나라.

사랑으로 지어진 집, 사랑으로 서 있는

기둥, 사랑으로 자라는 풀

, 사랑으로 숨쉬는 먼지,

사랑으로 물들어진 종이, 그 위에

사랑의 글씨만 씌어진 나라. 사랑의

밥을 먹고, 사랑의 옷을 입고, 사랑

의 국물을 마시고, 기침도 사랑처럼 하는

그런 별나라. 언제나 바뀌지 않는 사랑의

눈빛과 가슴들이 공기처럼 흐르는, 사랑만 숨쉬는

내 누이의 꿈 속의 유리알 같은,

그런 먼 나라.

이 지상 늪에서 보면

언제나 저만큼 가물거리는,

꿈꾸는 내 누이의 꿈 속의 먼 나라, 머나먼

저쪽의 불켜진 사랑의 나라.

 

기침도 사랑처럼 하는 그런 나라라니요. 코로나19 시국에 참 마음에 와닿는 구절입니다. 시집의 제목은 우울한 비상의 꿈이지만 시인이 꿈꾸는 나라는 이렇게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는 #불켜진_사랑의_나라 인가봅니다.

 

***

세 번째 시집은 홍영철 시인의 작아지는 너에게입니다. 이 시집의 캐리커처도 김영태 선생님께서 그리셨는데요. 이 시집은 문학과 지성 시인선’ 25번으로 앞의 이태수 시인 시집과 같이 198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서울책보고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19875쇄 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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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먼저 읽어볼까요.

 

 

 

1975년부터 지금까지 쓴 들을 묶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78년 이후에 씌어진 것들이다.

모두 참 쓸쓸하고 분주했던 시간들의 것이라 따로 그 연대를 매기고 싶지 않았다.

4부로 나누었는데 다른 뜻은 없고 그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쪽으로 모았을 뿐이다.

이렇게 보니 조금은 곱고 많이는 밉다.

이것들 대문에 그렇게 힘을 들었던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한편으로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그렇기만 하랴.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침묵과,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때우기로 하자.

 

 

 

 

이 시집은 홍영철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도 봄 관련한 시가 있는데요. 역시 봄이라는 계절은 시인과 참 어울리는 계절인가 봅니다. ‘봄밤일부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밤이 오고

비가 내린다.

유리창을 붙들고

비가 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쓰러진다.

 

이 시인에게 봄은 바람이 불고 비가 쓰러지는 조금은 우울한 계절이네요.

 

장석주 시인에 따르면, “홍영철의 시는 해가 지는 시각에 벌어지는 사건을 묘사한다. 일몰은 마음의 약동 속에서 인류가 날마다 겪어내는 천문학적인 사건이다. 붉은 고래 떼가 하늘에 나타나는 휘황찬란한 해 지는 광경은 장엄하고 한편으로 쓸쓸하다.”

 

정말 그런 것 같죠? 바로 앞의 이태수 시인이 사랑의 나라를 노래했다면, 홍영철 시인은 저물녘의 어두운 어떤 쓸쓸한 세계를 시로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

마지막 시집은 이기철 시인의 전쟁과 평화입니다. 1985년에 초판이 나온 이 시집은 문학과 지성 시인선’ 43번으로 꼼꼼하게 1980년대 세계의 전쟁과 폭력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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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죠? 1985년 여름에 시인이 쓴 자서입니다.

 

나는 시를 사랑한다.

못지않게 나를 사랑하고 여력으로

나와 이 시대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한다.

동시대인들이여, 우리는 함께 행복해져야 할,

어떤 위압적인 사태에서도 벗어나 행복해져야 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권리와 의무의 표현을 나는 시로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는 언제나 나의 괴로움의 반려이고 즐거움의 반려이다.

 

그렇게 시대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시인이었기에, 당시 세계의 전쟁과 폭력의 상황을 시로 승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바라보며, 이 시들이 더욱더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는데요...

 

벽시계와 잠옷들이란 시 한 번 읽어볼게요.

 

전쟁은 언제나 굶주린 채 몸을 떨며

오랜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산과 바다를 건너온다.

그의 최대의 적인 평화와 휴머니즘을 비웃으며

트로이 전쟁 아편 전쟁 임진란 6.25와 같은

그의 잃어버린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온다.

 

전쟁이 오면 우리가 짓던 교회와 사원, 학교와 마을금고

우리가 믿고 찾던 은행들이 문을 닫고

새 집으로 이사갈 아내들의 꿈도 술병도 깨어진다

우리가 쓰던 시 연재소설들의 인쇄소가 문을 닫고

활자와 모조지들이 저탄더미에 파묻힌다.

 

(후략)

 

전쟁이 오면 우리가 짓던 교회와 사원, 학교와 마을금고 그리고 은행이 문을 닫고 무엇보다 우리가 쓰던 시와 연재소설들의 인쇄소가 문을 닫는 현실을 시인은 운율을 살려 묘사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함께 사는 지구 한 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픈데요. 이 세계에 평화가 오기를 희망하며 이 시집을 마지막으로 절판 시집의 추억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이 시집들은 한 권 한 권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이후에 오직 서울책보고코너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니, 서울책보고 SNS도 눈여겨봐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