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0
INSIDE[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법정 수필집 《서 있는 사람들》,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
오직, 서울책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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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발견해 소개하지 않는 한 그냥 묻혀버리는 숨은 헌책들을 소개하는 〈오직, 서울책보고〉
김기태 교수의 글로 매달 여러분을 만나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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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수필집 《서 있는 사람들》
샘터사 / 2001년 3월 13일 초판 발행
《서 있는 사람들》은 평생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 스님의 《영혼의 모음》 (1973, 동서문화사), 《무소유》 (1976, 범우사)에 이어 출간된 세 번째 수필집이다.
이 책은 마땅히 자리를 잡고 자기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 제자리에 앉지 못한 채 방황하고 절망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정으로 쓴 글들을 모았다. 19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독재시대가 조성한 억압적 상황과 급격한 산업화가 불러온 자연 파괴와 인간성 상실에 관한 법정 스님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비겁한 지식인의 허상을 꾸짖고, 불신과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과 부도덕한 정치에 대한 스님의 신랄한 비판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종교인이면서도 이념과 현실을 뛰어넘어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올바른 길을 가리키는 스님의 죽비소리는 동시에 진정한 구도자로서의 길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법정 스님은 서문으로서의 '책머리에'라는 글에서 이 책의 제목을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붙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 잡문집(雜文集)의 이름을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붙인 것은 그런 선량한 이웃들을 생각해서다. 그들이 저마다 제자리에 않게 되는 날, 우리 겨레도 잃었던 건강을 되찾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무소유」로 대표되는 스님의 글을 읽노라면 종교적 색채가 짙은 순수한 수필만 썼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970년대 불교계 인사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나선 종교인이기도 했다. 또한 송광사에 '선수련회'를 만들어 산사(山寺)의 수행법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에도 앞장섰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템플 스테이'로 발전하게 된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암자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지냈다. 시간이 흘러 법정 스님이 머무는 불일암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홀로 지내기가 어려워지자 스님은 1992년 또 다시 출가하는 심정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오지의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법정 스님의 글은 40여 년의 세월을 넘어오는 동안 외형적으로는 비교 불가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사회 구석구석 숨어 있는 억압이나 불평등, 디지털 피로감이 쌓이면서 등장한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팬데믹(pandemic) 이후 사회적 불안이 깊어지고 있는 요즈음에 읽어봐도 스님의 청정한 목소리는 여전히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일깨워주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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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장편소설 《광장》
민음사 / 1973년 8월 20일 개정판 1쇄 발행
작가 최인훈(崔仁勳, 1934~2018)의 장편소설 《광장(廣場)》은 잡지 <새벽>의 1960년 11월호에 실렸다가 1961년 2월에 출판사 정향사(正向社)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바로가기)되었다. 작품 발표 당시 작가의 나이는 28세,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제2공화국이 들어설 무렵이었다. 작가 최인훈은 고등학생 때 겪었던 6·25전쟁과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을 훗날 의식 있는 청년답게 우려의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낸 작품이 바로 『광장』이었다. 하지만 모두 200쪽 남짓한 자그마한 책 한 권에 담긴 이 작품이 훗날 우리 현대 문학사(文學史)에 미칠 어마어마한 파장을 작가는 과연 예감했을까.
최인훈 선생은 1959년 24세 군인 신분으로 《자유문학》에 단편 「그레이(GREY) 구락부전말기(俱樂部顚末記)」와 「라울전(傳)」이 실리면서 등단했다. 이듬해 월간지 <새벽> 11월호에 문제작 『광장』을 발표함으로써 우리 문단의 대표작가로 떠오른다. 『광장』은 작가가 복무하고 있던 대전 병기창에서 백지에 손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주인공 '이명준'은 분단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사유하는 상징적 지식인으로, 남과 북 모두에서 체제에 절망하고 사랑에 환멸을 겪는다. 전쟁포로로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행을 선택하고 배에 오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짐으로써 '밀실'만 있고 '광장'은 없는 자본주의도, '광장'은 있고 '밀실'은 없는 사회주의도 정답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사라져 간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스스로의 삶과 사랑을 실현하지 못한 이명준의 실패는 결국 우리 현대사의 실패이자 인간 그 자체의 좌절을 상징한다. 이처럼 작가 최인훈의 작품 『광장』을 통해 우리는 현대사의 암울한 현실을 '성찰과 사유'의 대상으로 바꿀 수 있었거니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착과 집념은 초판본 발행 이후 계속 이어진 개정판 발행에서도 확인된다. 『광장』은 발표 이듬해인 1961년, 최씨가 당초 원고지 600매 정도였던 작품 분량을 800여 매로 늘려 정향사에서 첫 개작 단행본을 냈다. 이어 1967년 신구문화사, 1973년 민음사에서 각각 재출간될 때 단어와 문맥에 수정을 가했다.
작가는 1934년에 두만강변 국경 인근 함경북도 회령(會寧)에서 목재상 집안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후 들어선 공산 정권은 작가 집안을 부르주아지로 몰아세웠고, 위협을 느낀 작가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주한다. 원산 시절의 삽화(揷話)가 작품 「회색인」과 「하늘의 다리」, 「우상의 집」 등에 스며 있다. 원산고등학교 재학 당시 6·25전쟁이 터지면서 작가는 다시 한번 삶의 터전을 떠나 가족과 함께 월남(越南)한다. 1950년 12월 원산항에서 해군함정 LST(Landing Ship Tan; 전차상륙함)를 타고 부산에 내려 피란민 수용소에 잠시 머물다 인척이 있는 전라남도 목포에 정착하게 된다. 이처럼 영원한 실향민이자 유목민이라는 작가 최인훈의 정체성은 시대가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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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교수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초판본 · 창간호 전문서점 〈처음책방〉책방지기이기도 하며,
출판평론가, 저작권 및 연구윤리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롯데출판문화대상 심사위원장 및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한국 근대잡지 창간호 연구》,
《소셜미디어 시대에 꼭 알아야 할 저작권》, 《김기태의 저작권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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