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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0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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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엄두


                                  오은

 

청소하는 날이다 쓸고 닦는 날 내친김에 버리기도 하는 날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수북수북

다시 쓰지도 않을 거면서, 다시 읽지도 않을 거면서


엄두가 나지 않아


먼지와 엄두는 서로의 등을 밀어낸다 먼지는 나기만 하고 엄두는 나지 않기만 한다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청소는 금방 끝난다 그런데 정리는? 


그거 알아? 무질서에도 질서가 있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득하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읽다 만 책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가물가물한 책

새 책인데 헌책인 책  


먼지를 닦다가 책이 한 권 굴러떨어진다 먼지와 엄두를 동반한 채, 마지막 기회처럼, 무탈한 하루가! 이런 책이 있었다니…… 

그 말이 마치 이렇게 들렸다 이런 날이 있었다니!


제주에 갔었지 책방에 들러 책을 샀었지 그게 언제였더라? 지난봄과 지난겨울을 지나, 작년과 재작년을 거슬러, 삼십 대와 이십 대를 거쳐

이런 책을 샀던 무탈한 내가 있었다 눈부신 이런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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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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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