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0
BOOK&LIFE[SIDE B] 일상이 무료하다면
감정의 파도타기, 감정디자인
Ep. 6
일상이 무료하다면
고선영
작가
*
일상이 무료하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루하다.
이럴 때 뭘 하면 좋을까?
헌책방에 가서 손으로 책을 고르다가 발길이 멈춰진 곳에 섰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향수’라는 글자 밑에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제목보다 작가의 이름에 호기심이 일었다.
뭔가 단단하면서도 깨어지기 쉬울 것 같은 느낌의 이름이었다.
그렇게 펼쳐 든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코끝에서 향기가 느껴졌다.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아이다.
게다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체취가 유일하게 없는 아이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후각이 동물만큼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누가 다가오는지,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까지 알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이 천재적인 그르누이는 조금씩 자신의 재능을 악마적으로 발휘하는데….』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나에게만 없다면 어떨까? 인간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후각이 없다면 어떤 일을 만나게 할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감각은 잠깐 휴식기에 머물고 후각만 일하는 기분이 든다. 《향수》를 읽고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인상적인 부분에 대해 나누었다. 몇몇 사람들은 예상대로 흘러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나는 《향수》 이전에 ‘장자크상페’의 삽화로 더욱 유명해졌던 《좀머 씨 이야기》를 읽었다. 이후 이 책을 읽고 작가가 만든 세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49년 3월 26일생으로 올해 74세다. 뮌헨 대학과 엑상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가족들 대부분이 예술과 문학계에 종사하고 있다. 전공이나 가족의 직업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일상이 무료할 때 읽기 딱 좋은 책이다.
▶ 《향수》의 판권 페이지 ⓒ고선영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된 작가 소개는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찾아보았다.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을 받는 것도 마다하고, 단 한 장의 사진도 공개되기를 원치 않으며,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인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 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다. (중략) 이러한 대대적인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쥐스킨트는 모든 문학상 수상도 거부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고 있다.’
- 《향수》, 열린책들(2006) 저자 소개 중 일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지켜지는 삶.
글은 유명하지만, 사적으로는 유명하지 않아서 자유로운 삶이니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에게 더욱 매료되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신난다. 《향수》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그 점이 좋았다. 주인공 그르누이에 대해 연민이 생기다가도 살인을 서슴지 않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기도 했다. 무두장이 그리말과 주세페 발디니가 나올 때는 묵묵히 장인의 그림자가 되는 도제의 삶을 사는 기분을 느꼈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그르누이에게서 잔인하고 무서운 범죄자의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은 볼 때마다 나에게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에 봤을 때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라고 봤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사랑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한 불쌍한 남자의 어그러진 욕망 이야기다. 몇 년 후 다시 읽으면 ‘향기에 집착하는 천재의 자아실현’이라고 보게 될까? 좋았던 책은 읽고 또 읽는다. 와인처럼 이야기도 내 안에서 익어간다.
각 나라에서는 이 책 《향수》를 어떻게 디자인했는지도 궁금해져 몇 가지만 찾아보았다.
▶ (왼쪽) 미국의 《향수》, Washington Square Press
(가운데) 포르투갈의 《향수》, Zambon
(오른쪽) 한국의 《향수》, 열린책들
내가 처음 읽은 책 표지 디자인은 이렇다. 여자의 빨간 머리가 탐스럽고 아름다워서 시선을 끈다. 최근에 책방에서 독서모임으로 주문했던 책의 표지는 달라져 있었다.
판형이 길쭉하고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있어서 고급스럽다.
맨 아래 노란색의 표지인 책은 한정판으로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책에서 향수 냄새가 난다.
▶ (왼쪽) 열린책들 세계문학82 《향수》, 열린책들
(오른쪽)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향수》, 열린책들
▶ 실제 향수를 입힌 특별 한정판 《향수》 ⓒ고선영
이 책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그간 후각에 대한 글을 읽어본 기억이 없어서다. 낯선 것이 주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작가의 글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한참이 지나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수상을 했을 때도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생각했다. 공기, 물처럼 너무 당연한 것, 일상적인 것과 무료한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조금 비틀어보면 놀라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독서 모임을 마치고 깜깜한 밤, 아파트 숲을 지날 때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동안 이곳 아파트 숲에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노래다.
가족들도 많은 것 같다.
누구의 생일일까?
거의 합창하는 것으로 보아 나이 많은 노인이거나 어린아이일 것 같다.
아니면 친구들이 모였을까?
일상을 재발견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다른 감각을 곤두세워보자.
코를 킁킁거리거나, 귀를 쫑긋 세우거나, 손바닥을 쫙 펴고 만져본다거나
오래오래 씹어본다거나, 맨날 앉던 자리 말고 반대로 의자를 돌린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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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선영의
감정의 파도타기, 감정디자인>
감정의 파도를 맞을 때 살아남는 법:
내 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해 보자.
세찬 파도를 눈으로 보는 것이 두렵다면, 눈을 살짝 감아보자.
시원한 파도 소리를 두 귀로 느껴보자.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해 보자!
고선영
작가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 고선영입니다.
‘감정디자인’을 고안해 운영하며 마음의 힘을 실험하는 중입니다.
우리동네문화발전소, 악어책방 책방지기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수집합니다.
《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애정결핍》, 《엄마를 통해 나를 본다》를 썼습니다.
서울에서 악어책방을 운영합니다.
sunyoungk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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