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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0

BOOK&LIFE

[SIDE A] 설레는 일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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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일은 없지만

 

이사구

소설가

 

 

 

*

 

 

아침 7시 30분, 귀뚜라미 소리가 울린다. 아침부터 요란한 알람을 들으면 형용할 수 없이 불쾌한 기분이 되기에 선택한 알람 소리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찌푸린 얼굴로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나간다.


출근길 7호선은 언제나 경이롭다. 매 역에서 ‘더 이상 사람이 타기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온몸으로 공간을 창출해 내 전철에 올라타기 때문이다. 그 인파에 끼어있을 때마다 취업할 때 검증해야 하는 능력은 토익 점수나 자격증이 아니라 사람들을 밀치며 만원 전철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힘과 등 근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혼자 하곤 한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진이 빠져있다. 모니터를 켜고 자리에 앉아 떠올린다. 오늘도 이곳에서 9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이런 현실이 믿기지 않아 물을 떠 오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메신저를 보내 보기도 하지만 시간은 30분도 흘러있지 않다. 잠시 절망한 후 일을 시작한다. 회사에서 시간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란 정말 신기한 공간이라, 일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하면 시간이 느려진다. 기업 차원에서 마법사를 고용해 딴짓을 하면 체감 시간이 두 배 느려지게 하는 마법이라도 걸어 놓은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뿐이다. 일이 많을 때는 시간이 두 배 빠르게 흐르는 것을 보아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잡생각을 하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쏟아지는 잠을 버티며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 갑자기 발견된 오류에 대응하기도 하다 보면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퇴근은 다가온다. 

집에 오면 그토록 바랐던 자유시간이지만, 막상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밥을 먹고, OTT를 보고, 잠시 휴대폰을 하다 보면 곧바로 잘 시간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몰려오는 피로에 어쩔 수 없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금세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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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월화수목금, 주 5일, 똑같은 하루. 규칙적인 생활이 주는 장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깨어있는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무 시간 때문일 수도,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 업무 내용 때문일 수도, 비인간적인 출퇴근 환경 때문일 수도, 혹은 이 모든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매일 하는 업무가 즐거워야 하고 일하는 환경이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하지만 ‘말이 쉽다’라는 생각만 든다. 회사를 옮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만 줄지어 떠오르고, 결국 또다시 고갯짓할 뿐이다. 이럴 때면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못내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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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알에이치코리아

 

 

일본 작가 쓰무라 기쿠코《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는 이와 같은 궁금증이 들 때 읽기 적절한 소설이다. 작품에서는 서른 두살의 직장인 나카코와 시게노부의 삶이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디자인 회사를 다니는 나카코는 이상한 동료와 진상 고객을 상대하고, 건설 회사를 다니는 시게노부는 갑작스레 전근을 가는가 싶더니 악의 가득한 항의 전화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스트레스받는 일만 이어지는 매일이기에, 두 사람은 무기력함에 빠져들기도 하고 삶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감정은 죽지 않고, 두 사람에게는 설렘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스파카쓰’라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산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떠올려 보면 항상 똑같아 보이는 나의 일상에도 색다른 순간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 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걸을 때,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맛집을 찾아갈 때, 향이 좋은 밀크티를 파는 카페를 발견했을 때 등이다. 비록 설레는 일은 없고 불만족스러운 일상이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 덕택에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어떻게든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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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구

소설가


 

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글을 쓴다. 

소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를 출간했다